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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해방과 동물해방, 그 사이의 연결고리

Series/동물의 몸으로 경계 넘나들기

by SOURCEof 2023. 1. 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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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브래지어를 착용하세요.”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 굉장히 유해합니다.”

 

 

2019년 여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동물권 행진. 갑자기 경찰 한 무리가 우리를 둘러쌌다. 경찰이라니? 우리가 한 일은 단지 브래지어를 비롯한 상의를 탈의한 것뿐이었다. 공원에 선탠 중이었던 수많은 남자들이 하고 있는 차림새와 똑같았다. 하지만 차이점은 그들은 경찰에 붙잡히지 않았고, ‘여성’으로 보이는 우리 비건 페미니스트들은 경찰에 붙잡혔다는 점. 우리는 왜 여성의 가슴과 젖꼭지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게 체포 경고를 받고 옷을 입으라는 강요를 당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동물권 행진에서 가슴을 내보였는가? 결국 우리는 무사히 행진을 마칠 수 있었을까? 이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들과 행진, 그 날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2019년 8월 24일, 나는 한국 비건 페미니스트 친구 및 활동가들과 함께 암스테르담 동물권 행진에 참여한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으로서 모든 생명의 평등과 자유를 기원하고 그를 위해 행동한다. 우리는 한 생명이 고유한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고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반대한다. 한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를 알리고자 우리는 팻말을 들고 동물권 행진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상의탈의, 즉 가슴해방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 나는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먹자골목의 간판을 볼 때,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적 시선을 알아차릴 때 무수히 많은 존재가 그 자체로서 수단화되고 착취당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양상 간에는 교차성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비거니즘 관점에서 바라본 ‘종차별주의와 육식주의에 의한 비인간 동물 억압’과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본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의한 인간 여성 억압’ 간의 교차성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 여성과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는 각각 인간 남성과 인간의 쾌락과 편리함을 위해 지속되어 왔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가사의 전담자, 이등시민으로 인식하는 행위와 비인간 동물을 식품, 패션, 오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는 그 본질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여성 동물의 재생산권이 가부장제와 종차별주의에 의해 철저히 수단화된다는 점이다. 나는 ‘여성’ 인간 동물이다. 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로서 당연히 재생산 능력이 있다고 간주된다. 아이를 낳을 자궁이 있고 모유를 생산할 가슴이 있는 ‘여성’으로 말이다. 나의 존재를 그저 재생산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2016년 정부에서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가가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해 인식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는 여성 각자가 가진 고유한 존재성을 향해 아무런 예의도 갖추지 않는다. 더불어 여성의 가슴은 철저히 성애화되어있다. 마치 남성의 성적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마냥 말이다. 여성의 가슴은 남성의 가슴처럼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온갖 성적 대상화를 피하지 못한다. 여성을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성적 만족’을 위한 대상으로 보는 이런 시각은 사라져야 한다. 고로 여성을 재생산을 위한 수단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의한 시선을 비판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비인간 동물에 대한 종차별적 의식도 다를 바 없다. 비인간 동물은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고통도 느낄 수 없는 한낱 사물이 아니다. 여성 비인간 동물 또한 재생산 능력으로 인해 잔인하게 착취당한다. 공장식 축산의 소, 닭, 돼지부터 펫 공장의 개와 고양이까지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은 교배, 임신, 출산을 인간에 의해 강제로 평생 반복한다. 그 예로 소와 닭을 들어보겠다. 인간은 손으로 젖소의 질에 정액을 집어넣어 강제로 임신시키고, 갓 태어난 송아지를 위한 젖을 빼앗는다. 인간 동물에게는 사실 소젖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심지어 임신 중에도 착유를 지속하는 등 인간은 비인간 동물의 삶의 모든 순간을 학대하고 착취한다. 이 과정을 거쳐 나온 ‘우유’는 이미 도살장으로 끌려간 송아지의 것이었다. 일 년에 열두 번 알을 낳는 닭은 성장 촉진제와 호르몬 조작을 통해 매일 알을 낳게 된다. 끊임없이 알을 ‘생산’해야 하는 닭들은 만성적인 칼슘 결핍에 시달린다. 달걀이 자궁벽에 들러붙어 알을 낳을 때 자궁까지 같이 빠져나오는 ‘자궁 탈출 현상’도 빈번하다. 매일 좁은 케이지 안에서 마치 ‘기계’와 같이 달걀을 낳던 닭들은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인해 일찍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해방과 동물해방을 연결해볼 수 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설명한 끔찍한 행태를 비판하고 철폐하는 데 힘을 실어야 한다. 같은 여성 동물로서 우리는 이어져있다. 인간 동물보다 약자로 여겨지는 비인간 동물을 향한 학대와 착취가 계속되는 한, 인간 남성보다 약자로 여겨지는 인간 여성을 향한 차별과 수단화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존재의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사회가 금기시하고 성적 대상으로 편협하게만 바라보는 여성의 가슴을 떳떳하게 드러냈다. 환한 햇살 아래에서 우리의 가슴은 주체성으로 빛났다. 또 여성의 가슴은 타인의 성적 만족이나 재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그 자체임을 드러냈다. 바로 비인간 동물의 몸이 그들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 당연하듯이. 나의 몸은 나의 선택이듯이, 그들의 몸 또한 그들의 선택이다. 동물권 행진에서 가슴해방운동도 함께 함으로써 모든 해방은 그 결을 함께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동물의 몸이 되어 여성 인간 동물 그리고 비인간 동물이 경험하는 억압과 고통을 가시화하고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지 고발하고자 했다. 

 

 결국 우리는 경찰이 한 눈 판 새에 동물권 행진의 무리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행진의 틈 사이에 우리를 숨겨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우리는 가슴을 드러낸 채, 힘차게 함께 외쳤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여성 해방과 동물 해방을 위해 힘쓰는 이들과 함께 우리는 행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My Body My Choice, Their Body, Their Choice”
(나의 몸 나의 선택, 그들의 몸 그들의 선택)

 “Free The Nipples! Not Your Mom, Not Your Milk!”
(가슴을 해방하라, 너의 엄마가 아니면 너의 젖이 아니다)

 

 

이 시위 경험의 바탕으로 2020년 3월 8일,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성의 날 행진 때 또 비건 페미니스트로서 가슴 해방과 동물 해방 시위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사진을 찍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Thank you for being a vegan feminist.”
(비건 페미니스트로서 존재해주어 고마워)

 

 

 이처럼 수많은 응원과 지지 속에 나는 용기를 키워나갔으며 여성과 동물 해방을 위해 더 큰 발자국을 디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연대감에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이들이 함께하는 한 모든 존재의 해방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해방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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