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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물과 ‘저’ 동물

Series/동물의 몸으로 경계 넘나들기

by SOURCEof 2023. 5. 1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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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의 책 제목이다. 원제는 “Call Them By Their True Names”로 사건이나 상황, 대상을 적확한,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제대로 명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솔닛이 말한 대로 어떤 것을 재인식하고 거기서 나아가 재명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저번 달 글에서 “폐사”라고 당연하게 표현되는 농장동물(돼지, 소, 닭 등)의 죽음을 “대학살”이라고 다시 명명했다. 이번 글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한국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의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폐사”라는 단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 종차별적 사회의 부정의를 드러내고자 한다.

 

 

 

저번 달 글에서 다룬 돼지 880여 명의 대학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4월 13일, 또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양돈장에서 돼지 110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 공식적인 통계는 찾지 못했으나 양돈장이 밀집해 있는 제주에서는 이렇게나 자주 동물 대학살이 일어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제주 양돈 화재’만 검색해보아도 절대 가끔이라고 할 수 없는 주기로 일어나는 관련 뉴스 기사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뉴스 속 대학살의 묘사는 그저 몇 ‘마리’가 ‘폐사’되었으며 재산 피해가 얼마인지에만 그친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노후화된 전기시설 개선, 밀집된 사육 환경 개선 등이 제시되지만 나는 이 대책들이 ‘대학살’을 멈출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은 바로 ‘이’ 동물과 ‘저’ 동물을 나누는 종차별적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다. 즉, 그들(비인간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적확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개, 돼지, 소, 닭, 고양이, 곰... 모두 동물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국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은 각각의 동물들을 위한 보호를 어떠한 방식으로 행하고 있는가. 홈페이지에 들어간 순간, 나는 우리 사회가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을 나누고, 둘 간의 차별을 당연시 하듯, 비인간 동물 간의 위계질서와 차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의 카테고리는 크게 ‘구조동물’과 ‘농장동물’로 나뉜다. 살펴보면 개와 고양이 등 흔히 ‘반려/애완 동물’로 일컬어지는 동물은 전자의 이름으로 명명되며 구조의 대상이다. 하지만 돼지, 소, 닭 등 우리가 식탁 위에서 마주치는 동물은 후자의 동물로 명명되며 농장에서 나고 자라 죽임을 당할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 각각에 대한 보호 정책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구조동물은 대부분 유기견/유기묘로서 ⌜동물보호법⌟에 따라 특정 기간 동안 보호되고 입양되거나 보호가 종료된다. 동물보호센터도 운영된다.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은 동물등록과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지원하는 등 개와 고양이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농장동물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논조 자체가 달라진다. 바로 등장하는 것은 ‘농장동물 복지 개요’로, 여기서부터 동물은 갑자기 구조/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축산물’이 되어버린다. 이어서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를 설명하는 카테고리가 놓여있다.

 

“쾌적한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 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면 동물이 건강해집니다. 건강한 동물로 생산되는 축산물은 안전합니다.”

- 출처: 동물 보호 관리시스템 – 농장동물 복지 개요 중

 

동물의 5대 자유도 적혀 있으나, 이는 권고될 뿐 법적으로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기억해야할 점은 동물의 5대 자유가 보장되든 말든, 농장동물의 운명은 도축 혹은 살처분, 그 외에는 없어 보인다. 아무리 농장동물 복지가 향상되어도, 농장동물은 인간 동물의 음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위에 등장한 동물들은 모두 같은 동물이고 동물의 5대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상이하다는 것이? 동일하게 인간에 의해 동물로 인지되지만 그들은 “구조동물”과 “농장동물”, 다른 이름으로 분류되고 관리된다. ‘이’ 동물과 ‘저’ 동물이 갈릴 때, 어떤 동물의 죽음은 ‘애도’되고 어떤 동물의 죽음은 ‘폐사’ 처리된다.

 

 

지난 4월 27일, 전부 개정된 「동물보호법」과 그에 따른 새로운 시행령, 시행규칙이 발효됨에 따라 동물을 임의로 도살하는 행위가 드디어 금지됐다. 이로써 2020년 대법원 판결 이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 인정, 처벌되던 식용 개 도살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불법이 되었다. 식용 개 도살이 불법이 된 것은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변화가 농장동물 도살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동물을 임의로 도살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는데 왜 농장동물에 대한 도살은 ‘임의’가 아닌 것일까? 임의가 아니라면 도살해도 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임의가 아닌 정교하고 계획된 방식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은 ‘합법적’이며 윤리적이라는 것일까? 식용 개 도살과 농장 동물 도살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기서 “이름들의 전쟁”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본다. 폐사와 대학살, 피해금액과 애도, 농장동물과 구조동물, 임의 도살과 동물복지... 이 이름들 간에는 종차별적 사회의 관행과 철폐되어야 할 문화들이 만연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동물과 ‘저’ 동물이 갈릴 때 누군가는 죽음을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태어남과 도살됨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유도 없이 견뎌야 한다. 이 부당하고도 차별적인 현실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이름을 폐기하고 재명명해야 할까. 폐사가 아닌 대학살, 물고기가 아닌 물살이, 동물복지농장이 아닌 도살장, 우리가 치러야 할 이름들의 전쟁은 무수하다. 이름 바꾸기부터 시작하자. 이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참고 자료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800951?sid=102 

http://www.chuksannews.co.kr/news/article.html?no=252207 

https://www.animal.go.kr/front/index.do 

https://donghaemul.com/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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