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

Contents/Interview | 인터뷰

by SOURCEof 2022. 12. 22. 10:43

본문

동물을 키우는 것과 연애는 관련이 있을까? 우리는 왜 동물을 키울까? 최근 미국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를 키운다는 것을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프로파일에 올려 두면 매치될 기회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용해야 할 자원을 동물과 나누게 되면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 문제화되었다고 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 심리학과 John Archer는 말했다.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동물을 돌보는 것을 생각해 보면 John의 말이 이해가 간다. 우리는 퇴근하고 곧바로 집에 가서 동물들의 사료를 챙겨준다. 황금 같은 휴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러 간다. 그뿐만 아니다. 더 좋은 사료를 위해서 검색하고, 먹여보고, 어떤 사료를 좋아하는지,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동물을 보살핀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전혀 효율적이지도 않은 이런 심리적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을까? 이에 John은 자식을 키우고 연애를 위해서 누군가를 돌보는 기질이 진화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기질이 동물에게 투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 나아 가서 사만다로즈(Samantha Ross, the editor at Romantific)는 “동물을 키우는 것은 잠재적  연애 상대가 다른 생명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동물을 책임지고 기르는 것을 보면 나 그리고 내 가족, 더 나아서 커뮤니티를 책임감 있게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은연 중에 느끼는 것 아닐까?

 

정훈씨가 키우던 강아지 시월이가 산책 중인 모습

동물이 이어준 인연이 있다. 김정훈 씨(가명)와 김민주 씨(가명)는 2017년 말 직장인 극단에서 연출(정훈)과 배우(민주)로 처음 만났다. 이 둘은 몇 개월 동안 공연 준비를 함께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렸다. 2018년 초 공연이 막을 내리면서 둘은 딱히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뻔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정훈씨의 생일이 되었고 민주 씨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며 정훈씨 프로필 사진에 있는 강아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 강아지는 정훈씨와 3년(2018년 당시) 함께한 시월이다. 강아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훈씨는 “11월 독일로 2주간의 출장이 잡혀 강아지를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가 있는 동안 정훈씨는 누나네 집에 시월이를 맡기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업적 특성상 누나는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 반면 민주 씨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할 시간이 더 많아서 민주 씨에게 시월이를 2주간 돌봐줄 수 있는지 물었다.

 

민주 씨는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다”라며 걱정했지만 정훈씨는 “강아지가 여성을 잘 따르고 자율급식을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설득했다. 또한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 씨는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강아지를 2주 동안 보살펴주기로 했다.

 

무릎위에서 애교를 부리는 시월이

강아지가 민주 씨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11월까지 민주 씨와 정훈씨는 자주 만났다. 그 만남 속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정훈씨가 일 때문에 오랜 시간 집을 비워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민주 씨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정훈씨는 늦게 퇴근해서 많이 피곤하더라도 매일 강아지와 산책했다. 민주 씨는 이를 통해서 정훈씨가 생명체를 책임감 있게 보살피는 것을 알았고 이것은 호감으로 발전했다.

 

11월 정훈씨는 예정대로 독일로 출장을 갔고 거의 매일 같이 강아지 안부를 물었다. 이때 정훈씨 또한 강아지를 책임감 있게 돌봐주는 민주 씨를 보며 호감을 느꼈다. 이에 정훈씨는 “한 사람이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보고, 혹은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듯이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렇게 시월이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이런 작은 호감들이 모여 사랑이 되어 있었다. 독일 출장을 마치고 정훈씨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되었다. 심장을 가진 세 생명체 시월이, 민주씨, 정훈씨는 현재까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간식을 고르는 인간들과 별 관심 없는 시월이

때론 삭막하다 못해 차가운 도시 속에서 마음속 따뜻함을 들어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이성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따뜻함을 들어내도 ‘이용당하지 않는’ 안전한 관계 안에서는 조건 없이 사랑하며 돕고 싶어 하고 때론 도움받고 싶어한다. 도시에서 그 관계를 쉽게 이루기란 어렵다. 하지만 동물과의 관계에서는 쉽게 가능한 것이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겉으로 본다면 ‘이해타산적’인 세상에서 당연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에서 동물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 돌봄을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 동물들 앞에서는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순수한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니까.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