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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이 연결된 지점

Contents/Interview | 인터뷰

by SOURCEof 2023. 1. 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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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 | 저는 15살 때부터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다녔어요. 그때부터 이미 비건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 급식을 하니까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20살 되면서 먹는 것에 대한 선택이 생기잖아요. 그때부터 줄여나가고 끊기 시작한 거예요.

 

은전 | 그러면 이렇게 물어봐도 돼? 사실 오늘은 내가 나윤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서 온 거야. 동물 보호소 활동을 한다고 해서 비건이 되지는 않을 거잖아요. 훨씬 더 많은 영역은 동물 복지 같은 쪽으로만 갈텐데, 비건으로 점프는 어떻게 된 거예요?

 

나윤 | 그 점프가 사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비건으로 점프가 된 게 아니라 비건에서 유기견 보호소 점프를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 이유가 동물을 그냥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흔히 하는 행동이 있잖아요. 아빠한테 ‘나 강아지 좋으니까 강아지 사주세요. 토끼 키우고 싶어요.’ 이런 행동이 있는데 동물을 좋아하니까 부모님도 그런 것에 못 이겨서 강아지를 키웠던 적도 있고 또 동물에 관련된 책을 좀 많이 읽게 된 거죠. 그러다가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주말에 성당을 안 가도 되게 됬어요. 그 전까지는 엄마가 성당을 믿으셔서 성당을 다니다가 엄마가 돌아가셔서 중3 때부터 성당을 안 가게 된거죠. 그러다 보니 주말에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래가지고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주말에 가겠다고 했고 아빠가 그걸 오케이를 하셨어요. 아빠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셨을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굳이 얘가 집에서 맨날 tv 보고 컴퓨터 게임하느니 그런데 가서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처음 유기견 봉사를 간 곳이 애신동산이었고 포천에 있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였고 한국에서 제일 크고 험한 그런 보호소 중에 하나였어요. 동물을 좋아하니까 동물 관련된 책을 읽게 되고 그렇게 읽다 보니까 어떤 책에서는 비건이나 환경 관련된 문제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얽혀 들어가면서 비건이나 동물 관련된 인식이 생겼는데 이제 집에서 비건을 하려다 보니 할머니가 요리를 하시고 할머니는 무조건 고기를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고 학교에서 비건을 하려고 하다 보니 학교 급식에 무조건 고기가 섞여 들어가 있고 해서 못하고 있다가 이제 20살 되면서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아버지도 이해를 잘 못했어요. 지금은 이해를 해 주시는데 가족들도 제가 비건을 하거나 고기를 안 먹는 부분에 있어서 되게 오랫동안 못 받아들이고 특히 저희 할머니 같은 경우는 제가 이제 스페인에서 한 1년 정도 살고 돌아왔을 때 제가 집에 와서 맨 처음 밥을 먹을 때 저한테 했던 말이 ‘치킨 먹어라.’였어요. 제가 계속 고기를 안 먹고 비건으로 변화하게 되고 케어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도 이제 받아들이시고 비건하는 건 좋다 근데 건강하게 먹어라 골고루 먹고 이런 부분을 더 챙겨 먹어라 하게 된 거죠. 제사를 지낼 때도 작은 고모나 큰어머니가 오셔가지고 제사 음식 할 때도 제가 먹을 수 있게 전에 고기를 안 넣는다든가 이런 식으로 조금씩 바꾸게 되신 거죠. 케어에서 활동하면서 이제 관련된 일을 하니까 집안사람들이 그런 활동하는 걸 보고서는 비건이나 동물권 관련되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신 거예요. 사실 비건이라는 게 음식 먹는 것뿐만 아니라 옷을 입는 거라든가 신발 사는 것도 동물로 만든 것은 안 쓰는 거잖아요. 신발도 가죽으로 된 것은 안 쓰고 이런 건데 초반에는 아버지도 그거 되게 힘들어하셨어요. 아버지가 신발 사주겠다고 하셔서 같이 가서 신발 두 켤레를 샀는데 하나가 그냥 천으로 된 신발이고 다른 하나가 가죽 신발이었던 거예요. 가죽 신발 산 게 너무 마음에 안 들고 너무 싫어서 이거 가죽 신발 사는데 너무 싫다 얘기를 하려고 했더니 아빠가 ‘가죽 신발이야? 좋은거 샀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신 거예요. 나는 너무 싫어서 얘기를 한 건데 이런 충돌도 있었고 제가 말라서 겨울에 추위를 많이 타는데 덕다운 안 입는다고 하니까 ‘이걸 입으면 따뜻하고 하는데 왜 너는 안 입냐?’ 이러고 아버지가 덕다운, 구스다운 같은 옷을 입은 다음에 저한테 막 자랑을 하세요. ‘아빠 점퍼 모자에  붙은 건 뭐예요?’ 물어보면 ‘이건 코요테야.’ 자랑하시고 그런 부분들이 아직까지 있으세요. 그래도 저의 활동은 인정을 하고 이야기 기는 하시려고 해요. 그런데 같이 사는 가족들을 바꾸기는 쉽지 않죠.

 

은전 | 불가능하죠. 네 바꾸려고 하니까 싸움이 나지

 

나윤 | 여태까지 안 싸운 게 다행이죠.

 

은전 | 진짜 좋은 가족인 거죠. 안 싸운 게 나는 사실 나윤이 그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가족과 불화하는 그 시기에 나는 야학을 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내가 노들 야학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족이 못 받아들이셔서 나는 집을 나왔거든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본 장애인의 현실 혹은 내가 이 일을 할 때 기쁨 이런 게 언어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가 나지. 말을 못하니까. 자꾸 화를 내게 되고 우리 아버지 원래도 그렇게 대화가 잘 되는 관계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뭘 보고 왔는지 애가 막 이렇게 해가 딱 돌아버렸으니까. 정말 미쳐버렸어요. 내가 너무 미치게 좋아했어요. 노들야학을. 장애 운동에 되게 푹 빠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대화가 안 되죠.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너무 멀리 갔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버렸으니까. 내가 DxE를 딱 만나는 순간, 그 커뮤니티를 만나는 순간, 나는 이제 이 친구들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워지겠구나. 이런 세계를 경험해버렸으니까. 그런 거였어요. 내가 노들야학을 만났을 때도 노들야학 바깥에서 만난 내 대학 친구하고 만나면 다 거슬려요. 말하는 거 진짜 장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데도 다 거슬려. 어떤 문화 자체가 충돌하기 때문에. 하다못해 저 대학 다닐 때는 그렇게 술을 강권하는 문화였어요. 이러면 내가 폭력적이었다고 느꼈을 것 같지만, 내가 강권하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을 그렇게 배웠어요. 술을 따라주고 술을 먹게 하는 것이 선배로서의 어떤 당연히 후배에게 베풀어야 될 사랑이자 가르쳐야 할 예의 이런 걸로 배웠죠. 그렇기 때문에 술을 또 먹어주는 게 이 선배에 대한 예의 그렇게 술을 배우고 나도 후배한테 그렇게 술을 강권한거죠. 그게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지 이게 막 폭력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노들야학에 왔더니 이런것이 권위적이구나? 이런 모든 게 다른 거. 평등을 지향하고 일상 안에서의 차별을 얘기하고. 이런 집단 안에서 그 경험들을 하고 나니까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랬던 그 경험하고 나윤이 한 경험하고 되게 비슷할 것 같아요. 말이 안 통해요. 많이 싸우게 되고 진짜 의절하듯이 저는 집을 나왔거든요. 스물세 살에 가족 관계가 거의 파탄이 났죠. 근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글쓴이: 나윤

동물이 좋아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물이 좋아 비건이 된 사람. 동물 중에서는 대동물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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