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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반죽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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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3. 1. 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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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반려인이 꿈틀거렸다. 이불을 덮고 들썩거리는 모양새가 흙 속의 지렁이 같았다. 반려인은 나를 부르며 찾았다. 찰랑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갤 돌려 대답했다. 반려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무서운 꿈을 꿨어. 찰랑이는 잘 잤어? 나는 여유롭게 발을 놀려 다가갔다. 반려인은 침울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인사를 건넸다. 머리를 비비며 배 위에 올라가 한참 발바닥을 밀었다. 초록 풀이 옆으로 길게 누운 것 같은 아름다운 나의 눈을 반려인이 멍하게 보더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우리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오르내리는 배. 배고프면 별별 소리를 다 내는 텅 빈 물탱크 같은 곳. 반려인과 나는 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잘 때 눈을 감았다가 깨어나며 다시 눈을 뜬다. 심하게 배고프면 소리가 나는 배도 있다.

 

 

 

 

  나는 인간에게 빙의할 수 있다. 빙의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들의 영혼을 잘 반죽하면 된다.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처럼. 영혼은 밀가루처럼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영혼의 냄새를 맡을 줄 알았다. 정확히는 영혼이 먼지처럼 내려앉은 부분에 코를 가까이하면, 그곳만 공기가 묶이고 사라진 듯이 냄새가 사라진다. 영혼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 부분을 잘 눌러보면 딱딱한지 찐득한지 나풀거리는지 느낄 수 있다. 밀가루는 고소하고 텁텁한 냄새가 났다.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고소한 향이 나서 그 위에 궁둥이를 붙여 보고 싶었다. 나는 부드러운 것이 좋다. 밀가루는 모래보다 더 부드럽고 발바닥에 잔뜩 붙어 올라왔다. 으으! 진저리를 치며 발을 털자 반려인이 내 발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발자국이 찍힌 밀가루 위로 물을 부었다. 어깨를 들썩이고 팔의 근육이 꿈틀거리도록 밀가루를 돌리고 섞고 눌렀다. 빙의할 때도 비슷하다. 발부터 핥아야 한다. 반죽에 청결은 중요하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촉감으로 잘 반죽하기 위해 배 위에 올라간다. 배에서 제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명랑할 정도로 나풀거리는 느낌을 좋아한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자, 이렇게. 발가락 하나하나 펼치며 누른다. 놀라서 움찔거릴 수 있다. 두 발을 함께 누르는 것보다 번갈아 가며 눌렀다가 떼는 것이 좋다. 반려인이 가끔 발톱이 아프다고 칭얼거릴 수 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빙의를 할 줄 아는 고양이는 나 말고도 많다. 그렇다고 빙의를 할 수 있는 모든 고양이가 영혼을 반죽하진 않는다. 나는 빙의하기 위해서 하지만 어떤 고양이는 영혼의 촉감이 좋아서 쉼 없이 누를 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아하는 촉감이 될 때까지 반죽할 때도 있다. 우린 서로에게도 자주 해준다. 하지만 함부로 영혼을 반죽하려다 이마를 얻어맞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촉감으로 바꾼다는 건 영혼이 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죽기 전 허공에 발을 놀리는 애들도 있는데, 몸이 죽어도 다른 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다. 우린 그렇게 아홉 개의 목숨을 더 가질 수 있다. 영혼을 반죽하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고양이가 글까지 써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 있는지. 당신은 궁금할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은 어렴풋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할 것이다. 반려인은 배 위에 올라간 나를 보며 요상한 소리를 냈다. 우으응-하며 감격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 영혼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삼스러웠다. 유난스럽게 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려인이 약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찰랑아... 접힌 아래턱이 느끼해서 배 위에서 내려온 적도 있다. 

 

  우린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보니까. 반려인이 나를 찰랑아, 아가야, 고양이야, 밥 먹자, 사랑해, 악몽을 꿨어, 졸려, 씻자고 하는 것 모두 우리에겐 의미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내는 자신이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인간은 우릴 과하게 추켜세우거나 어떻게든 사라지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당신들의 언어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영혼을 알아볼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우리를 이상하게 여겼다. 숭배하거나 신성하다고 했다. 요물이라거나 불길하다고 했다. 별것 아닌 걸 가지고 유난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밥을 챙겨준다고 생색도 내고 유세도 떨었다. 건물 아래 살던 친구가 사라진 적도 있고 건물 자체가 없어져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친구도 사라지고 건물도 사라진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다양한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이상하다. 우린 나비도 되었다가 짐승도 되었다. 나는 우리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아픔이 신성한 것이 되는 것도 보았다. 

 

   마침 반죽도 다 된 듯하다. 딱딱했던 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숨도 더 오래 들이쉬고 오래 내쉰다. 얇은 천처럼 팔랑거리지는 않지만 가볍게 나풀거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고로롱. 빙의하기 딱 좋다. 반려인은 눈을 감고 있다. 아침에 다가갔을 때처럼 배 위에서 유유히 내려왔다. 반려인의 발치에서 잘 곳을 미리 봐 놓았다.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동안의 내 몸은 잠들기 때문이다. 나는 목소리를 보낸다. 반려인이 고갤 든다. 눈이 마주친다. 고양이의 몸은 잠들고 인간의 몸은 일어난다. 책상 앞에 앉는다.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귀를 쫑긋할 고양이를 위해, 나는 쓴다.

 

 

 


글쓴이: 베니

찰랑이 반려인. 글쓰고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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