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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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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3. 1.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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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동물들이 과거에는 많았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인간들은 동물의 목에 줄을 채워 산책하러 나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죽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함께 더 많이 산책하러 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 놀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산책이란 행위가 없어지고 반려동물들 스스로 놀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거다.

 

자동차 전용 구역(관련 글 읽기)이 생겼기에 반려동물은 안전하게 어디든지 뛰어다니다가 반려 인간을 만나러 온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인간 동물의 통제 아래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니다. 동물 각자의 삶이 있고, 인간 동물과 반려동물은 서로의 삶을 존중한다.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나와 짝을 이루는 동물들은 모두 반려동물인 것이다. 나는 매일 숲에서 보는 까치 치치를 나의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3년 전 처음 만났다. 치치는 우리 집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 치치의 영역 안에 우리 집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치치의 영역에 자주 가고, 치치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과거에도 인간들이 숲속 동물들을 반려동물이라고 불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그런 자료를 찾지는 못했다.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는 애니멀 호더에 대해서 유튜브에서 봤다. 2017년도에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이었다. 그 사람은 동물을 작은 철창 안에 가둬서 키웠다. 푸들로 추정되는 한 강아지는 단 한 번도 작은 철창 밖을 나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철저하게 자유를 빼앗은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끔찍했다. 어쩌면 돈을 주고 동물을 구매했기 때문에,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주면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본주의 세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몇몇 동물을 자신의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물들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모두가 해방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듯 하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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