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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구조한다는 것

Contents/Reconceptualizing | 새로운 관점

by SOURCEof 2023. 1. 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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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적이 있는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집을 만들어주고. 유기된 강아지를 입양하여 키우고. 

 

실험실에서 쓰인 쥐를 구조하거나, 공장식축산업의 현장에서 닭을 구조한다던지….

 

 

 

 

위험한 상황에 놓인 비인간동물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구조’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동물권 활동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인간동물을 구조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구조(救助)’라는 단어는 ‘난 따위를 당하여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을 의미한다. 사람에 한정된 단어인 것이다. 또한 공장식축산업처럼 동물이 누군가의 사업 재산, 소유물로 규정된 경우 그들을 구조한다는 것은 ‘사유권침해’, ‘절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구조는 계획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위급한 상황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눈앞에 어떤 생명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그냥 지나치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사람이 위험에 처해있으면 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겠나? 하지만 위험에 처한 동물 앞에서는 다양한 감정과 걱정이 오고 간다. 만약 이 동물을 구조한다면 그 비용과 돌봄과 책임은 온전히 구조한 본인이 떠맡게 된다. 그렇기에 그냥 지나친다는 이유로 지탄받아서도 안 될 일이다.

 

 

 

 

나 역시 시골에 살면서 집 근처 산길에 유기견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대학생시절 자취를 할 때는 친구가 구조한 새끼고양이를 내가 입양해서 키우기도 했다. 외모로 차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집에서 키울 법한 예쁜 강아지가 도로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차를 멈춰 세우고 고민한 적도 있다. 현재 우리집에는 친구 활동가가 도계장 근처에서 구조한 닭 잎싹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우리집에서 보호하고 있는 잎싹이는, 내가 잎싹이를 입양함으로써 잎싹이가 생을 다할 때까지 책임져야 하게 되었다.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음식을 주고, 아픈 곳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동시에 부담감도 느꼈다. 언론에도 등장하고,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닭인 만큼 내가 더 건강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부담감. 어느날 고양이의 습격에 잎싹이가 집밖으로 도망쳤을 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며 들었던 생각은 바로 ‘나 이제 어떡하지? 활동가들에게 뭐라고 설명하지?’였다. 나에겐 잎싹이에 대한 애정보다 그녀를 안전하게 보호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더 앞섰던 것이다. 간혹 우리집은 ‘나’의 집이 아니라 ‘잎싹이’의 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잎싹이는 나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 돌봄노동이 응당 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시될 때, 잎싹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의 돌봄노동이 지워질 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이런 저런 나의 경험을 거쳐 ‘구조’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구조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이 떠맡아야 하는 사회 구조상, 구조한 동물을 본인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구조하는 것이 맞을까? ‘개’를 예로 들면,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깊은 개가 한번 주인을 잃고 나서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는데, 그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또 다른 곳으로 보내게 되었을 때 개가 받게 될 상처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반려동물 산업을 위해 강제 개량•번식•감금되는 펫샵의 개와 고양이 / 과도한 육식으로 인해 공장식축산업•수산업에서 고통받는 소, 돼지, 닭, 물살이 / 가공식품 생산을 위해 벌채되는 야생동물들의 터전 /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는 새・해양생물들 / 이 외에도 모피•가죽 산업, 실험동물 산업, 서커스•동물원•아쿠아리움 산업 등

 

이처럼 끊임없이 개발하고, 생산하고, 버리고, 소비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비인간동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고통받고 있다.

 

비인간동물이 처한 위험이 사회 구조적 문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돌봄 문제로 해결될 때, 양쪽 모두 중요하지만 전자가 선행되어야 하며 후자가 공감능력이 높은 개인의 책임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온전히 사회 전체가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인 및 집단의 이윤을 위해 동물을 사고 팔고, 동물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행위 등. 이 모든 것이 법과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종의 비인간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고통받고, 인간에 의해 구조되어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의 생과 사를 인간이 좌우하는 것이다. ‘병주고 약주고’. 어떤 약을 줄지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병을 주지 않을지 사회가 다같이 고민하여야 한다.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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