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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다 사람이 먼저인가요?

Contents/Reconceptualizing | 새로운 관점

by SOURCEof 2023. 1. 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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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지” 오늘은 이 말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이는 관계성을 단순화하는 사고 중 하나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여기서 잘 모르겠다고 하면 “엄마랑 아빠가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살릴 거야?”라고 물어본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지”라는 말에도 “왜?”라고 대답하니, “돼지랑 사람이 물에 빠져 있으면 누구 먼저 구할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먼저’를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겹치거나 연결될 수 없도록 관계성이 2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관계란 그물처럼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2차원으로 된 선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3차원 혹은 4차원, 5차원으로 된 관계를 맺는다. 그렇기에 ‘누가 먼저냐?’는 말은 무의미하다.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 우리는 합리화를 해야 한다. 내가 저 존재를 차별한 것은 마땅하다고 말이다. 과거에는 여성의 두뇌가 작다며 여성 차별을 정당화했고 유색인종 또한 짐승과 비슷하다고 합리화했다. 똑똑한 척 합리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을 것이기에 ‘과학’과 ‘철학’을 빙자해서 합리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합리화는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여성 차별이 정당화되고, 유색인종 차별이 정당화된다. 동물 차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정당화된다.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장식으로 길러내도 돼” “동물은 지능이 낮으니까” “동물은 기계와 같으니까” 와 같은 말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사회에서 차별이 정당화되는 존재들은 약자들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작고 그 작은 목소리로는 반기를 들기 힘들다.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명목으로 똑똑한 척 철학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조금 모순되었다고, 조금 경솔했다고 솔직히 말해보는 것 어떨까? 필자는 동물해방을 이야기하면서 농사를 짓다가 지렁이를 여럿 죽였다. 개미도 죽였다. 자연스럽게 머리는 지렁이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합리화하려 했다. 합리화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모순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완벽해질 수 없다.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대로 살아갈 수 없다. 때론 모순된 행위들을 한다. 모순된 행위들까지 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모순을 인정하고 자각해야지만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가 퍼지지 않는다. 합리화를 위한 논리 때문에 수많은 약자가 고통받기 때문에, 합리화만 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모순성을 가졌기에 복잡하다. 완벽할 수 없기에 복잡하다. 물에 엄마와 아빠가 빠졌을 때 아빠를 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엄마를 살리지 않은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다. 물에 돼지와 사람이 빠졌을 때 돼지를 먼저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먼저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 사람이 아닌 돼지를 살렸다고 해서, “저 사람은 사람보다 돼지를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라고 판단해버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행동은 수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아 바뀐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내지 않지 않을까?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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