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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를 앓는 뫼비우스의 꽈배기

Series/장애 ---- 동물

by SOURCEof 2023. 1. 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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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소리를 혐오하곤 했다. 아빠의 밥 먹는 소리를 참을 수 없어서 이어폰을 끼고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쩝쩝. 훅. 쭈왁쭈왁. 흐륵흙.” 먹거리 골목의 간판들은 모조리 내 눈에 날아와 박혔지만, 정작 정확한 가게들의 이름은 못 읽었다. 조마조마했다. 만원 지하철에서 절규했다. 나를 손잡이로 쓰거나 내 몸을 밀치며 반작용으로 지나가는 인간들을 죽일 듯이 증오했다. 세세한 계획을 쥐어짤 때 내 머리는 찢어졌다. 수업 시간에도, 모의고사를 칠 때도 나는 잠이 들었다. 건방지게 맨 앞에서 잔다고 머리를 세게 맞았다. 눈을 여태까지 쭉 뜨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막 눈을 뜨고 있다. 멀티 태스킹을 하면 분노와 혼란이 나를 갉아먹었지만,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나를 집어삼켰다. 동성애도 좋아하는 것 중 하나여서 열심히 했다. 밥 먹는 것도 까먹고, 꽁꽁 감추면서. 지워지고 닳도록. 그래도 속으로 매일 작게 외쳤다. ‘나는 퀴어다!’

 

 

‘장애는 퀴어다.’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전복적이고 해체적이고 이론의 첨단을 달리고 규범성에 저항하는 선언처럼 들린다면, 그 반대는 어떠한가? ‘퀴어는 장애다.’(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21쪽)

 

 

‘퀴어’와 ‘장애’가 그렇게 친밀할 줄은. 다시 속으로 외친다. ‘나는 정신질환을 앓는다. 퀴어다. 그리고 장애가 있다!’ 일곱 빛깔 ‘장애’의 스펙트럼도 제법 포근하다. 자, 이번엔 나의 반려견들을 소개한다. ‘사랑하는 나의 반려견인 빵돌이와 연히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고, 그것은 장애다.’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이 와중에 누가 ‘선택 장애’, ‘결정 장애’ 같은 단어들을 흩뿌린다. 길쭉한 혀를 순식간에 타고 내려온다. 스윽— 눈알들을 스쳐 간다. 이상하다. ‘장애’는 항상 무거우면서 가볍다.

 

누군가 ‘WHITE ONLY’를 지우고(깨끗이 지우지는 못했다), 그 위에 ‘NO KIDS’ 혹은‘NO PET’을 썼나? 어린아이와 반려동물은 사회에서 자주 초대받지 못한다. 문전박대를 당한다. ‘시끄럽다, 불쾌하다’라는 평을 자주 받는다. ‘정상 성인’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서 시끄럽게 들리는 걸까? 독일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얘기하면 시끄럽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들은 울지 말고, 짖지 말고, 물지 말고 그냥 ‘닥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때, ‘정상 성인’의 언어로 누가 또박또박 외친다. “장애인은 소, 돼지가 아닙니다.”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ooo이다.” ‘NO KIDS’ 존인지 모르고 왔다가, 카페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이가 아이의 손목을 잡아끈다. 신경질적으로 내뱉는다. “어휴, 시끄러워!”

 

‘장애’는 ‘장애’다. 인종,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처럼, ‘장애’ 역시 만들어진 개념이다. 무엇이 장애이고 무엇이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규정으로서의 ‘장애’는 시대와 일부 기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장애’라는 것은 사실 깐깐한 규칙으로 무장한 정상성 사회와 내가 빚는 마찰의 정도가 아닐까? 누군가는 눈에 띄는 마찰을 빚고,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는 마찰을 빚는다. 여성도, 벽장 속의 퀴어도, 외국인도,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농인도, 어린아이도, 노인도, 그리고 많은 ‘짐승’들도. 모두를 위한 축제를 상상해본다. 빵돌이, 연히, 새벽이, 잔디와 함께 이동권 시위를 하고,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여성의 날을 함께 축하하는 순간들을.

 

 

 

 

 


글쓴이: 젤리박

파주에 사는 과몰입 퀴어. 터부와 그 주변의 것에 관심이 많다. 소리를 매체로 무언가를 만들 때도 있다. 도그 워커이며, 노견들이 많이 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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