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달려도 괜찮은, 장애가 있어도 괜찮은

Series/장애 ---- 동물

by SOURCEof 2023. 1. 1. 10:09

본문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지민은 보더콜리라는 이름으로 분류된다. 보더콜리들은 ‘몰이 성향’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사람과 교류하며 발달된 능력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물체 혹은 생명체에게 반응한다. 이를테면 사람, 동물, 자동차 같은 것들을 쫓아가서 앞을 막아선다. 오랜 시간 대대손손 이어져온 이런 몰이의 능력은 복잡한 도시에서는 꽤나 곤란할 때가 많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보고 흥분해서 산책이 중지된다던지, 고양이나 다른 개들을 보고 쫓아가거나 짖는 정도는 사소하다. 심지어는 산이나 공원에 사는 새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지나가는 자전거 앞에 뛰어들어 위험천만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사건의 (?) 보터콜리 지민

 

 

    사건은 지민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돼서 일어났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지민과, 초보 반려인(나)은 여느 때와 같이 산책을 나섰다. 산책한다고 신이 나있는 지민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리쉬를 당겼다. 그런데 그날따라 지민은 유난히 심하게 당겼고, 그날따라 약간 느슨했던 하네스가 예상치 못하게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녀석 풀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아차 싶어 서둘러 달려가 보니 어느새 차도 쪽까지 다가가서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무척이나 흥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불러보아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다가가서 잡으려 했지만 때마침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고 홀린 듯 쫓아가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따라갔지만 아직 어리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지민. 결국에는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시선을 옮기더니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차를 몸으로 막으면 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에 부딪친 지민은 큰소리로 “깨갱!”하고 울부짖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 사라졌다. 당황한 자동차와 경악한 나만 두고 말이다. 순간 많은 것을 느꼈다. 인간의 무지함은 강아지를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인 것은 때마침 모든 것을 지켜보던 자전거탄 시민이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었고, 곧이어 산에서 혼자 웅크려 있는 지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울면서 녀석을 부둥켜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민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했고, 나는 한동안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한 생명의 목숨이, 안위가, 건강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초보 반려인과 어린 강아지

 

    이 도시의 도로, 시설, 건물 대부분의 공간이 인간, 특히 비장애 성인 남성들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짜여 있다. 그 속에서 배제되는 인간들, 그리고 동물들은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꼭 몰이 성향을 가지지 않아도 동물들이 차에 뛰어들어 다치거나 죽는 경우는  많이 일어난다. 이런 도시에서는 지민의 마지막도 차에 부딪쳐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어울리는 안전하고 드넓은 벌판은 내가 마련해줄 수 없을뿐더러 사실 이 나라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요령을 함께 배워야 했다. 사건 이후 몰이 성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온갖 작업들에 매진했다. 반년을 넘게 연습과 훈련을 통해 움직이는 물체에 흥분하는 것도 많이 나아지게 되었고, 무엇보다 리드 줄이 풀렸을 때도 부르면 돌아오는 리콜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쩌다가 집을 탈출하거나 줄이 풀리더라도 차에 치여있는 지민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한시름 놓았지만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끔씩 가슴 덜컹하는 그날이 떠오를 때마다, 만약에 그때 지민이 크게 다쳤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종종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여 본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 또한 보더콜리였고, 역시 몰이 성향이 컨트롤되기에는 아직 어릴 때 사고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사고로 인해서 뒷다리 양쪽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네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에게 뒷다리가 마비되면 그것을 후지 마비라고 부른다. 그의 가족들은 바퀴로 된 보조 기구를 뒷다리에 달아주었다. 집에는 작은 뜰이 있어서 재활훈련도 하고, 산책도 하고, 원반 놀이도 한다. 함께 사는 가족들은 그와 함께하는 그런 일상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남기고,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면서 삶의 과정을 소소하게 SNS에 올렸다. 나는 종종 그들의 계정에 들어가 보며 울컥하는 날들이 많았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서 나누어주는 그들에게 고마웠다. 솔직히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뒤뜰이 있는 집도 없고, 당장 병원비와 보조기구를 살 돈, 그리고 병원비를 벌면서 치료를 병행할 시간의 여유도 없다. 그런 내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 자격이 있을까? 나에게 묻는 날들이 많았다. 나와 같이 준비되지 않은 인간들 덕분에 많은 반려동물들이 다치거나 장애를 얻게 되면 버려치거나 죽임을 당한다. 보호소에서도 다쳤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안락사 순위에 쉽게 오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장애가 있는 동물에게도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시각장애가 있는 강아지에게는 엔젤링이라는 눈을 대신해서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는 보조 기구를 사용할 수 있고, 또 냄새나 소리 등 다른 장치를 이용해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워크앤런’이라는 기업은 장애동물을 위한 맞춤 보조기구를 생산한다. 다리가 마비되었을 때 사용하는 휠체어, 다리에 다른 문제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보조 기구, 대신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의족도 있다. 장애가 있더라도 대안은 있다. 그동안 몰랐을 뿐.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대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맞춤 휠체어 (출처: 워크앤런 홈페이지)
시각 장애견을 위한 엔젤링 (출처: Walkin’ pets 홈페이지)

 

 

    동물들에게 더 이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뛰어다니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 같은 이 녀석. 언제 어디든 달리고 싶어 하는 녀석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세상, 그리고 혹여나 다치더라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두렵지 않은 세상. 그래도 괜찮은 세상에 살고 싶다.

 

 

 

글쓴이: 효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텃밭을 가꾸고 요리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 반려견 지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sunature_project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