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장애 닭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Series/장애 ---- 동물

by SOURCEof 2022. 12. 31. 19:09

본문

집 앞에 마당과 뒤편에 대나무 숲을 끼고 있는 시골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집에는 반려 닭 세 마리가 있다. 냉이, 쑥이, 돌이. 야생에서 나는 나물의 이름을 붙였다. 냉이, 돌이는 수탉. 쑥이는 암탉이다. 냉이는 갓 태어나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발에 장애가 있었다. 오른쪽 발목이 안쪽으로 휘어 발등으로 걷는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냉이'로 지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며 강한 생명력을 갖고, 더군다나 향긋한 냄새를 품고 있는 냉이. 냉이가 이처럼 잘 자라주길 바랐다.

 

맨 처음 냉이를 봤을 때,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기형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장애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뜰살뜰히 밥과 물을 따로 챙겨주는 일이었다. 닭에게 발은 그들의 먹이활동과 안전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로 흙을 이리저리 파면서 먹이를 잡아먹고, 적이 나타났을 때는 두 발로 빠르게 도망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냉이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하지만 냉이는 요령을 터득하여 잘 걸어 다녔고, 나머지 한쪽 다리로 흙을 파면서 자기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다.

 

 

병아리 때의 닭들, 맨 앞에 있는 아이가 냉이이다. 오른쪽 발에 장애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냉이와 돌이가 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즈음되어서야 우리는 닭들을 위한 집을 지어줬는데, 내부에는 얇은 원통 모양의 나무 횟대를 설치해 주었다. 그런데, 아차! 한쪽 발이 불편한 냉이는 둥그런 횟대에 안정적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본래 닭은 밤이 되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잠을 자는 습성이 있는데, 냉이는 그러질 못했기에 밤이 다가오면 불안해했다. 그래서 나는 냉이를 위해 좀 더 넓고 평평한 나무판대기로 된 횟대를 추가해주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에 올라타 있는 냉이를 보니 왜 진작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6개월이 지나 닭들은 성계가 되었다. 문득 다리를 절며 걷는 냉이를 보며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의 영상들을 참고하니, 아! 병아리 시기에는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병아리 때는 뼈가 약하기 때문에, 이때 구부러진 발뼈들을 강제로 펴서 부목을 며칠 간 받쳐주면 뼈가 다시 붙어 걷는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훌쩍 커버린 냉이는 뼈가 거의 굳어버린 상태라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막심한 후회가 밀려왔다. ‘왜 제때 치료해주지 못해서 지금까지 고생하도록 만들었을까?’ 죄책감이 들었다. 부산에 있는 동물병원 4~5군데에 전화해 닭을 치료해주는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수술은 할 수 있으나 1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뼈를 임의로 부러뜨려 쇠로 연결해야 한단다. 큰 문제가 없다면 이대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아쉽지만 하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냉이가 병원에 갔을 때. 닭들은 눈을 가리면 잠에 들기 때문에 옷으로 얼굴을 가려 편히 잠들어 있도록 했다.

 

닭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관찰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감정상태가 어떤지를 유추할 수야 있지만 실제 어떤 감정과 고통을 지니고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냉이는 아픈 발 때문인지 다른 닭들에 비해 훨씬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 나에겐 특히나 까칠하다. 먹을 것을 손에 올려 내밀면 내 손을 꼬집듯이 물어버리곤 한다. 내가 걸어갈 때 뒤에 달라붙어서 공격할 기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 자신도 생리통이 심할 때나 손의 습진이 심해질 때는 극도로 예민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아마 냉이도 아픈 발 때문에 예민한 성질이 나타나는 것일까?

 

어미 닭이 있었다면, 냉이는 이미 죽은 몸일지 모른다. 어미 닭은 몸이 불편한 병아리가 태어난 것을 보면 바로 부리로 쪼아 죽인다고 한다. 차라리 냉이가 인공부화기가 아닌 어미 품에서 태어났다면, 그때 어미 닭에 의해 쪼임을 당해서 죽어버렸다면, 지금의 고통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다. 그래도 넌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끝까지 살아남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좀 절뚝거리면 어떤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쉬면서 행복하면 됐지!

 

냉이의 반려인으로서 해준 건 별로 없지만 냉이는 자신의 생존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건강한 한쪽 다리로도 다른 닭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까. 그저 냉이가 제 명대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냉이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