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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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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3. 1. 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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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앞서 옛날 사람임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가족의 종류에 대해 떠올렸을 때 대가족과 핵가족, 1인 가족이 먼저 생각났다. 가족을 규모로 나눈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결혼 또는 혈연으로 맺어진 거라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굳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사회는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을 짓누르기 너무나 쉬운 구조기 때문이다. 부양의 의무나 재산 상속 같은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정신적인 문제에 가깝다. 질문을 바꿔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가족에게 소외감을 느꼈을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기존의 가족이란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1인 가족이라고 해도 학업이나 취업 때문에 잠깐 혼자 사는, 독립의 의미가 더 강하다. 부모님이나 형제가 있으면 1인 가족은 가족 소개란에 자기 혼자만 적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은 가까운 이들에게서 생겨난다. 가시 곁에 다가가지 않으면 상처도 생기지 않기에.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계속 가시에 찔려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가족을 선택할 수 없거나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새로운 용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새로운 가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영화를 통해 이 가족의 특징을 알아보자.

 

 

출처: 다음영화

 

영화 <어느 가족, 2018>엔 결혼이나 혈연관계가 하나도 없는 가족이 등장한다. 바람난 전 남편의 연금을 받아 살아가는 하츠에 할머니 집엔 오사무와 노부요 부부가 얹혀산다. 이들은 할머니와 어떠한 관계도 없다. 본명도 아니다. 노부요는 폭력적인 남편을 둔 호스티스였고, 오사무는 그녀의 손님이었다. 오사무는 노부요의 남편을 살해하고 그녀를 구한다. 그 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어떤 이해관계가 맞아서 하츠에 할머니 집에 머물게 된다. 불임인 그들에게는 쇼타라는 도박장 주차장에서 주워 온 남자아이가 있다. 오사무는 쇼타를 아들처럼 생각하며 도둑질을 가르친다. 하츠에 할머니 집에는 이들 말고도 아키라는 할머니의 손녀가 함께 산다. 아키는 바람 난 전 남편이 낳은 자식의 아이로 실제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나 하츠에는 아키를 진짜 손녀처럼 대한다. 이들 가족에게 부모에게 학대받던 쥬리라는 여자아이가 새로운 식구로 함께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오사무와 쇼타가 불 꺼진 집 베란다에 홀로 나와 있던 여자아이에게 고로케를 주며 따뜻한 자신들의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언뜻 유괴처럼 보이지만 부모는 아이를 찾지 않고, 아이는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고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출처: 다음영화

 

 

영화 <가족의 탄생, 2006>에도 일반적으로는 보기 어려운 가족이 등장한다. 미라는 떡볶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있는데 군대 전역한 이후로 5년 동안이나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 형철이 20살 연상의 애인 무신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형철을 끔찍이 아끼던 미라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무신과 서먹서먹하지만 잘 지내보려 애쓴다. 하지만 무신의 전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생긴 채현이라는 여자아이가 무신을 찾아오면서 그들의 관계는 바닥으로 치닫는다. 무신은 미안해하며 아이를 돌려보내려 하지만 형철이 자신이 책임진다면서 만류한다. 그러나 언제나 말뿐인 형철은 술을 마시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전혀 연고가 없던 미라, 무신, 채현 세 사람은 어쩌다 보니 정이 들어 함께 살게 된다. 나중에 채현이 성인이 되어 경석이란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경석 또한 복잡한 가족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끔찍이 싫어하던 누나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은 이부남매다. 엄마의 새로운 애인들에 진저리 치던 딸 선경은 엄마가 돌아가시자 따로 살던 동생 경석을 맡는다.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선경은 경석에게 자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를 아들처럼 키운다.

 

 

출처: 다음영화
 

<어느 가족>, <가족의 탄생> 두 영화 다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아니 상상하기 힘들었던 형태의 가족이 나온다. 그런데 따뜻하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꼭 낳아야만 부모가 되고, 꼭 부모가 같아야만 형제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하츠에 할머니가 죽은 후 신고하지 않고 땅에 묻는다. 후에 형사에게 붙잡힌 노부요는 왜 시신을 유기했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출처: 다음영화
 

버린 게 아니라 주운 거라고. <어느 가족>은 버려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주워 상처를 치유하고 애정을 준다. 미라와 무신, 채현 그리고 선경과 경석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가족이 된 이들은 이제 서로를 버릴 수가 없다. 기존의 가족처럼 싸우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이어져 있기에 멀리 떨어져 있거나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뒤에도 연결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핀치>에서는 더 나아가 사람과 동물,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신선한 가족이 나온다. 정이라는 건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있다.

 

 

 

 

<핀치>의 세계는 멸망해가는 중이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전자기 펄스가 발생해 소수의 인류만이 살아남는다. 한낮 온도는 60도까지 치솟고 방호복 없이는 돌아다닐 수도 없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 핀치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만든 로봇 듀이와 함께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굿이어라는 개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개를 돌볼 누군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완성되기 직전 40일이 넘게 고립될 수 있는 폭풍이 찾아온다. 핀치는 데이터 전송을 72%까지만 끝낸 채 반려견 굿이어와 로봇 듀이, 훗날 제프라 불리게 되는 인공지능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이 기묘한 가족은 생존을 위해 거의 매일 화를 내는 핀치와 미완성으로 태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사고뭉치 제프,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로봇 듀이, 보호자인 핀치를 사랑하는 굿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애플 티비
출처 : 애플 티비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호기심 많은 아이 같은 인공지능 제프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핀치는 제프에게 네가 해야 할 유일한 임무는 굿이어를 돌보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이란 단순히 누군가가 누군가를 돌봄으로써만 지속되지 않는다. 제프와 함께 여행하면서 핀치는 단순히 데이터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핀치는 제프에게 어릴 때 떠난 아버지로부터 15살 때 샌프란시스코 골든브릿지가 나온 엽서 받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성공해서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양복도 샀다고 말한다. 하지만 끝내가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제프는 핀치가 죽고 난 이후 굿이어와 함께 골든브릿지로 향한다. 그건 단순히 목표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제프는 굿이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려 한 것이다. 자신을 단순히 굿이어를 돌보는 기계라 생각했다면 제프는 골든브릿지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비록 핀치가 곁에 없지만, 그들은 마음으로 이어진 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야기 나누기 위해 여행을 계속한다.

 

 

 

 

글쓴이는 현재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떠나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족들은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면 힘드니까 맡겨놓고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비행기를 장시간 타야 하는 여행을 감수했다. 회사에 다닐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반려견을 위해 지금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이들이 이미 이렇게 느낄 것이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라고. 하지만 아직 각종 복지 정책에 반려동물을 빠져있다. 세금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반려인은 세금을 내는 대신 가족의 권리를 얻는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아직 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이 아플 때 휴가를 내거나 상실의 고통에 허덕일 때,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만이라도 지켜주면 좋을 거 같다. 가족의 형태는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각각 고유하고 고귀하다. 전통적인 기존의 가족은 당연히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다만 그 가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힘들다면 마음으로 이어진 새로운 가족을 생각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전제가 되는 가족. 많은 경험과 웃음이 당신의 가족과 함께하길 바란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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