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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남은 세상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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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3. 1. 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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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사진 출처=BBC)
 

언택트 혁신(비대면, 비접촉 소비 등), 셧인 이코노미 현상(Shut-in Economy) 같은 단어가 새롭게 등장하거나 재택근무, 원격교육, 국경봉쇄, 수출규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공급망 불안정 등 검색어 아래에 있던 단어들이 매일 뉴스에 오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아직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량 퇴직(Great Resignation) 현상은 없지만, 노동자들이 일과 소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건 분명해 보인다. 나만 해도 코로나 시대에 실직한 이후 N 번째 질풍노도를 겪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일했는지, 생활비 때문이었다면, 삶이 망가져 가는 와중에 진심으로 누리고 싶은 생활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예리한 사람이다)

 

2020년 12월 10일. 대한민국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천2백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있던 와중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100배가 넘는 22년 2월 말과 비교해보니 참 적은 숫자였다고 느껴진다) 최근 발생한 사람 전염병의 75%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의 근본 원인을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라고 볼 때, 코로나바이러스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탄소중립 선언’과 같이 자연과 공존하는 문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곡점이 바로 지금이다. 변곡점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번 상상해보자.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The Year Earth Changed)

감독 톰 비어드, 다큐멘터리, 2021
 

로나 팬데믹 선언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지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밝힌 다큐멘터리다. 거리에서 사람의 발걸음이 사라지자 공기가 맑아지고, 물이 깨끗해지고 동물들이 수년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번식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인 거 같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건 자연에 끼치고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증거다. 영상을 다 본 뒤 우리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당연한 걸 그동안 왜 무시하고 지냈었는지. 그리고 인간 사회가 다시 팬데믹 이전 속도로 복귀하는 순간, 자연은 새로 생긴 생명의 숫자만큼 비명을 지를 거라는 것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인간이 만들어 낸 소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교통 소음이 70%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소리로 소통하는 동물들에게 조용해진 지구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곳이 된다. 흰정수리북미멧새는 1950년 이후 최저치의 교통량을 기록한 금문교 덕분에 가장 활발한 번식기를 가졌다. 혹등고래는 유람선이 멈추며 25배 조용해진 알래스카만에서 새끼와 좀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 됐다. 새끼가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이다. 효율이 증가하면서 새끼들이 성체가 될 확률도 높아지게 됐다고.

 

 

사진 출처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육상동물도 마찬가지다. 그 주인공은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른 치타. 케냐 마사이 마라는 연간 방문객이 30만 명 이상인 인기 있는 국립 공원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면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의 사냥이다. 문제는 사냥에 성공한 어미가 새끼들을 불러야 하는데, 자동차 엔진과 무전기, 관광객의 떠드는 소리 때문에 울음소리가 묻힌다. 새끼가 어미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사냥한 먹이를 먹일 수 없고, 그렇다고 계속 부르면 경쟁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새끼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지구상의 치타는 현재 약 7천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마사이 마라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3개월 이상 된 치타 새끼의 숫자가 증가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인간이 사라진 공간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동물도 많아졌다. 바다거북은 2~3년마다 자신이 태어났던 해변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고 한다. 해변을 인간들에게 점령당한 바다거북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조용해진 해변에서 붉은바다거북은 둥지를 만드는데 61%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40%였다고 하니 놀라운 증가다. 둥지 한 개에 100마리 정도의 새끼가 더 태어난다고 하니 몇십년 만에 베이비붐을 맞이하게 될 예정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사는 아프리카 펭귄도 사정은 비슷하다. 넷플릭스 <펭귄 타운>에서 소개됐던 이 녀석들은 그나마 다른 야생동물들과는 다르게 인간과 잘 공존해왔던 걸로 보였다. 주택 정원에 숨어들어 포식자를 피하거나 해변을 돌아다니며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등 나름대로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인간이 포식자를 쫓아내 주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펭귄은 훨씬 더 개체 수를 늘려나가게 된다. 이유를 찾아봤더니 그동안은 펭귄들이 사냥 후 새끼들에게 먹이를 배달해야 하는데 해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해 질 녘에나 가능했다. 한적한 해변에서 펭귄들은 이전과 달리 2~3번까지 사냥을 나가서 새끼들을 배불리 먹인다. 첫째를 낳고 다시 둘째를 키우는 모습은 10년 넘게 보지 못했던 광경이라고.

 

다큐멘터리는 이 밖에 코로나 이후 활기차고 다양해진 지구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멸종위기종인 산악고릴라는 새끼를 두 배나 많이 낳았고, 최소 10년간 보이지 않던 희귀종 가시해마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관광 보트에 손상된 해초 집이 복구된 까닭이다. 케냐의 라이키피아 코뿔소는 뿔 때문에 사냥당하지 않은 게 199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밀렵 때문에 상아 없는 코끼리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팬데믹 덕분에 상아가 있는 코끼리도 사냥당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다큐멘터리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맺는다. 인구 3,600만 명의 인도 아삼. 이곳에는 멸종위기 동물이 아시안 코끼리가 살고 있다. 인간이 숲 대부분을 농지로 바꾸는 바람에 자연 서식지가 5%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에 150kg씩 먹이를 먹어야 하는 코끼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내려온다. 농부들이 밤을 새워 코끼리를 내쫓아보지만, 결국 쌀 수확량의 반 이상을 빼앗긴다고. 그런데 팬데믹이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온다. 지역 보호 단체에서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도시 근로자들의 힘을 빌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그들은 야생 코끼리를 위해 벼와 풀을 심어 완충지대를 조성한다. 500명이 넘는 공동체원이 힘을 모았다고. 결과는 대성공. 이제 마을 주민들은 코끼리를 쫓아내는 대신 환영하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이는 장기적인 해결책이기에 더욱 값어치 있는 성과다.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단순히 락다운을 통해 생태계가 얼마나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거북이의 산란을 위해 밤의 해변은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치타의 생존을 위해 관광객들은 사냥 후 어미 곁에서 떨어진다든지, 고래들의 소통을 위해 보트를 그룹 지어 가능한 한 천천히 이동한다는지 등의 아이디어를 내고 근거를 댈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히 인간이 없어야 생태계가 회복된다고 결론 내리지 말자. 인간도 동물이기에 공존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언어와 영상을 통해 어느 생명체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식을 남길 수 있지 않은가.

 

 

팬데믹 이후 30년 만에 16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을 본 잘란다르 사람들

 

 

팬데믹 선언 이후 3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도 남았고, 인간도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공존해야 할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연이다. 위드 코로나 대신 위드 네이처(with nature)의 관점으로 팬데믹 3년 차의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싶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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