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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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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2. 12. 3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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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에 종종 에스키모가 나올 때가 있다. 북극곰이나 표범의 가죽을 옷으로 입고 있다고 해도 영하50도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인류는 모두 플라이스토세(빙하기)에서 생존한 개체이다. 그렇다고 ‘그럼 나도 한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라며 내복없이 겨울을 나는 걸 추천하지는 않는다. 에스키모들은 유전자 변이를 통해 열을 내는 갈색지방이 온 몸에 분포한다고 한다. 빙하기 이후 1만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극지방에서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그 유전자가 남아있는 거 같지는 않다. 그리고 추위에 잘 견디는 유전적 특징 하나로 인류가 극지방에서 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또 다른 필수 조건이 하나 있다. 그건 썰매개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인류가 동계올림픽을 시작한지도 10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니 이젠 썰매개를 대체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스노우모빌은 눈밭을 시속 100~200km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 개썰매는 시속 30km 이하의 속도가 최대다. 그러나 만약 그린란드나 극지방에서 살 계획이라면 스노우모빌을 샀다고 썰매개를 잊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냥이나 탐험을 나갔다가 스노우모빌의 배터리가 방전된다면 스노우모빌은 예쁜 관이 될테니까 말이다. 방송에서 개썰매를 경주 대회나 관광 상품으로 이용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지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썰매개는 아직도 필수 생존 수단이다. 썰매개를 다룬 영화 두 편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1.  토고(Togo, 2019)

출처 : 다음영화

 

토고는 지랄견이다. 처음엔 토고라는 이름도 없었다. 그냥 지랄견이었다. 세팔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토고를 두 번이나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그에게 썰매견이 아니라면 개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한 번은 파양되고, 다른 한 번은 제 스스로 탈출하여 세팔라 부부에게로 돌아온다. 지랄견답게 힘이 넘치고 재빨랐던 녀석은 주어지지도 않은 썰매견 대장 자리에 앉아버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멋지게 해낸다. 하지만 세팔라는 몰랐다. 토고가 단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리기 위해 썰매개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을. 토고는 세팔라와 함께 있고 싶어서 썰매를 끌었다. 이 영화는 마을을 구한 토고라는 썰매개와 세팔라 부부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디즈니 영화가 자주 그러듯이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끝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나 녹아버리는 바다의 얼음, 나이듦과 죽음이 나올 뿐이다. 악당은 물리치거나 무시하면 된다지만 죽음은 감당해야만 하는 진실이다. 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출처 : 다음영화

 

1925년 알래스카의 노움 마을에 디프테리아가 발생해 아이들이 감염되고 만다. 혈청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지만 눈폭풍 때문에 운반 할 수 있는 수단은 개썰매뿐이다. 개썰매 대회에서 우승했던 대장 토고와 세팔라가 이끄는 썰매팀이 유일한 희망이다. 문제는 시간 내에 혈청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과 토고가 12살의 노견이라는 점, 그리고 기상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건 토고가 아니라 마지막 배송을 맡은 발토뿐이었다. 이 영화는 숨은 영웅이었던 토고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감춰졌던 사실이 알려진 이후 발토 혼자 있던 뉴욕 센트럴파크에 토고의 동상도 세워졌다고 한다. 물론 토고뿐만 아니라 썰매를 끄는 모든 개들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과 개(늑대)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지 약 4만 년, 본격적인 가축화는 1만 5천 년이 흘렀다고 한다. 둘 모두 사회적 동물이었기 때문에 쉽게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극지방이 아니라면 개들이 했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다. 개들은 사냥을 돕거나 집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인간만 지구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모든 동식물을 쫓아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인류는 역사에 길이 남을 악당이 될 것이다. 동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진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고의 동상을 보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건 썰매개들이 달렸던 이유가 인간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반려인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없다. 토고가 더이상 아프지 않도록 은퇴한 이유도 이와같은 연장선에 있다. 서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함께 살아갈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2. 에이트 빌로우(Eight Below, 2006)

출처 : 다음영화

 

 

8마리의 썰매개가 남극에 남겨진다. 인간과 함께 살아왔던 개들은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새롭게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택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그들은 기다림을 위해 최소한의 생존법을 익힌다. 오랜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하지만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오랜 기다림은 그 끝이 두 가지뿐이다. 기다림 끝에 만나거나 살아있을 때 만나지 못하거나. 이 영화는 남극 탐사대가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겨진 썰매개들의 생존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들이 모두 떠난 남극에서 썰매개들은 리더인 마야를 중심으로 사냥하는 법, 추위를 이겨내는 법, 죽은 동료를 잠시 애도하는 법 등을 배우며 살아간다. 아직 천방지축이었던 막내 맥스는 사냥에 도움이 되지 못하자 무리에서 떠나 잠시 방황한다. 마야와 무리들은 맥스를 무리하게 데려오려 하거나 배신했다며 질책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돌아온다면 함께 다니는 것이 룰의 전부다. 왜냐면 그들은 모두 동일한 삶의 목적 즉, 기다림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멀리 갈수도 없다.

 

 

출처 : 다음영화

 

썰매개들은 생각보다 야생에 적응을 잘 한다. 방수가 되는 두꺼운 털과 눈구덩이만 잘 파서 준비하면 한파도 버틸 수 있다. 늑대의 본능으로 협동 작전으로 새를 사냥하거나 죽은 고래의 사체를 물범으로부터 얻어낸다. 실제로 그린란드 썰매개는 야생에 가깝게 환경을 제약해서 기른다고 한다. 어린 새끼가 태어나면 한파가 찾아와도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또 먹이도 5~6개월 동안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혹독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녀석들만 썰매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썰매개가 되었다고 생존 조건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썰매를 끌 수 없는 2개월 간의 여름이 되면 개들을 한 곳에 묶어두게 되는데 혹시 싸움이 발생해 서로를 죽일까 봐 먹이도 3일에 한 번 정도 만 제공한다고 한다. 썰매를 끌 때는 쉬거나 말을 잘못 알아듣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 채찍을 맞는다. 물론 모든 썰매개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린란드 전통적인 방식의 썰매개들은 지금도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학대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제공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은 에이트 빌로우의 썰매개들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추위에 강하다고 해도 남극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썰매개들의 담당이었던, 다시 말하면 가족이었던 제리 쉐퍼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개들만 남극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최대한 빨리 돌아가려 했지만 자원이나 기후, 사람 모두에게서 지원 받지 못해 좌절하고 만다. 6개월이 지나서야 남극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제리는 올드 잭의 시체를 발견하고 묻어준다. 결국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기적적으로 생존한 6마리의 썰매개들을 발견한다. 개들은 늦게 돌아온 제리를 반기며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반려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도시라는 미증유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반려동물들 떠올리게 만든다. 썰매를 끌거나 야생동물의 침입을 경계하지 않는 도시의 반려동물들도 사실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썰매개는 전세계에 널리 퍼진 개 가운데 북극 지역에 적응한 품종을 의미한다. 그린란드 썰매개, 알래스카 말라무트, 허스키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북극 지역에 거주하던 인류는 탄수화물이 부족해 지방 중심의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썰매개는 이런 북극의 식단에 맞춰 AMY2B 유전자를 적게 지니고, 고지방 식단을 소화시키거나 지방 성분을 혈액에서 제거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농사는 물론 수렵 채집도 어려운 극지방에서 인류는 사냥밖에 음식을 구할 길이 없었다. 만약 썰매개를 길들일 수 없었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현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인간에게 유용한 자원(물질적, 정신적)을 제공하거나 도시에서 최대한 떨어져 사는 것이다. 멸종 직전에 보호종으로 지정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지난 10년간 멸종된 동물은 자연적인 멸종보다 467배 빠르다고 한다. IPBES(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플랫폼) 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위기의 근본 원인은 5가지이다. 동식물 서식 공간의 감소, 사냥 및 밀렵, 기후변화, 공해, 외래종 침입(세계화 현상에 따른 종의 이동) 모두 인간으로부터 나온 원인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최선인 걸까? 개와 인간은 둘 다 사회적 동물이었기 때문에 협력을 통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전적응이라는 이미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다. 앞선 두 영화를 보더라도 썰매개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벌써 죽었을 테지만 썰매개들은 인간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었다. 누가 누구를 길들였다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누가 누구 위에 있다 따지는 일이 아니다. 오르막에서는 사람도 썰매에서 내려 썰매를 끌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동식물들에게 오르막일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생존했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편하더라도 썰매에서 잠시 내리지 않으면 인류는 마지막 겨울 혼자 썰매에 타고 있을 것이다. 

 

글을 준비하면서 썰매개에 관한 영화와 자료,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았다. 개썰매를 타보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썰매를 끌기 위해서 개들이 가혹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걸 알고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당장 개썰매가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생을 위해서는 이젠 대체할 방법을 찾고 필요하다면 기본적인 동물권(인권에 비견되는)을 보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가축이 되었다고 생명권을 침해 당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썰매개들이 무거운 짐 없이 자의로 맘껏 달릴 수 있는 설원을 상상해 본다. 두 영화가 상생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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