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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널 사랑하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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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2. 12. 3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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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반려동물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엇인가요?

 

“안 돼”, “귀여워”, “예뻐”, “먹어”, “뱉어”, “하지 마”, “앉아”, “뭘 그렇게 봐?”, “오늘 하루는 어땠어?”, “씻자”, “밥 먹자”, “산책 가자”, “자러 가자”, “씩씩하네”, “맛있어?”, “잘 먹네”, “고마워”, “사랑해” …

 

이름을 제외한다면 보호자는 반려동물에게 하루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하나를 꼽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오늘 하루 건강한 것만으로 고마운 나이가 되었다면 대부분은 이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아프면 안 돼”, “괜찮을 거야”, “내년에도 같이 오자”

 

건강할 때는 몰랐다.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건지. 사실 어렸을 때는 건강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처럼 당연히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조금 더 빠른 시간을 가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그 의미를 늦지 않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보다 어렸지만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말이다.

 

SNS나 Youtube에서 ‘귀여운 동물’을 검색하면 방대한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엄청나게 높은 조회수를 확인할 수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계속 비슷한 콘텐츠를 공급받다 보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귀여움’은 실제로 쾌락 중추를 자극해 양육행동을 이끌어낸다. ‘귀여움’이 감정표현에 흔히 사용돼서 그렇지 사실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 풀어쓸 수 있다. 길가다가 아기나 강아지를 만나면 귀엽다는 말 대신 “너는 생존을 위한 탁월한 전략을 소유하고 있구나”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콘텐츠만 보고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다가, 다 자랐다고 나 몰라라 하거나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부 유투버는 조회수 때문에 귀엽고 어린 새끼들을 무분별하게 데려와 학대에 가깝게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반드시 이별을 경험한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이별은 죽음이다.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이자 자식인 가족의 마지막을 평생 기억해야만 하는 그런 일인 것이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영화 <나의 개 이야기>에는 이런 독백이 나온다.

 

 

우리 개 이야기, 이누도 잇신, 2005
 
있잖아 마리모, 왜 그런 거야? 널 처음 봤을 땐 부서질 것처럼 작았었는데, 울보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늦게 태어났는데, 어째서 나보다 빨리 나이가 드는 거니? … 어째서 개를 길렀던 걸까. 왜 기르고 싶다고 했던 걸까. 이렇게도 큰 슬픔을 겪을 거면서. 마리모 너무해. 정말 미워. 개를 기르는 게 아니었어

 

 

나이 든 반려견 마리모는 남겨질 보호자 미카에 전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있잖아. 미카. 맨날 응석 부려서 미안. 장난만 쳐서 미안. 빨간 구두 숨긴 거 미안. 하지만 내 보물이었어. 매일 산책해줘서 기뻤어. 여러 가지 꽃 이름도 알려주고, 바다에도 데려가 줬지. 벌들도 쫓아줬어. 미카 멋있었어. (사료) 산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다 남아버렸네. 바다 또 가고 싶었는데. 있잖아 미카. … 사랑해줘서 고마워.

 

 

도서 <너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지만>에서 저자는 유기견이었던 제주견 ‘달로’를 키우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지만, 새별(글)/윤나리(그림), 생각 의견, 2019

 

가끔 나보다 빨리 흐를 네 시간을 생각해. 어느 날 문득 나의 나이 든 개가 될 너를. 제주에서 늘 외따로 떨어진 존재였던 내게 너는 의미가 되어주었어. … 너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지만 그러니까, 달로야. 우리 그 시간이 아쉽지 않게 살아가자.

 

 

반려동물 보호자란 다른 말로 한 생명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평생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영화 <Arrival>의 루이즈 뱅크스처럼 미래를 안다고 해도 그 선택을 되돌릴 보호자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보호자에게 나이 든 반려동물은 그만큼 사랑할 이유가 더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끼들(욕이 아니다)과는 차별화된 나이 든 반려동물의 장점 3가지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1.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웹툰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에는 청력과 시력을 잃은 열일곱 살 늙은 개 낭낙이가 나온다. 작가는 소파나 침대에 누워 손을 뻗고 있으면 어김없이 낭낙이가 다가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보드라운 털을 만질 수 있다며 신기해한다. 보이지 않아도 나를 찾아내고, 들리지 않아도 부르면 다가오는 낭낙이에게 작가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도감과 평온함을 느낀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1~3, 초(정솔), 북폴리오, 2011~13

 

 

2.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다.

웹툰 <노견 일기>에는 열여덟 살 노견 풋코가 나온다. 풋코는 예전만큼 길게 산책을 하지 못하고, 좋아하던 수영도 금지당하고, 때론 집에 계속 누워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보호자가 어디를 가든 꼭 붙어서 따라다니려 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소중한 추억도 쌓여간다. 작가는 풋코에게 하루를 잘 버텨냈다며 칭찬하고, 다음에도 다시 이곳(해변)에 오자며 행복의 한도를 늘려간다.

노견 일기 1~5, 올드독(정우열), 동그람이, 2019~21
 

3.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게 된다.

키우던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면 반강제로 단골 병원을 만들고 수의사 선생님과 친밀감을 유지하게 된다. 나를 위한 단골 가게는 줄이고, 나보다 더 많은 약과 영양제를 먹이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끌어안게 된다. 그럼에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돈이 아니라 함께 할 시간이 말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병원비가 많이 들게 되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일 수도 없으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생각하고 반려동물을 키워야 한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노견 일기>를 보면 이 모든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다.

 

사실 위 3가지 이유 때문에 나이 든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보호자는 없을 것이다. 그냥 오늘 하루 건강한 것만으로 나에게 안도감과 행복을 주는 유일한 존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나이 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는 만약 반려동물이 딱 한마디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랑해”라는 말보다 “나 아파” 또는 “몸이 이상해”라는 말을 할 수 있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제때 병원에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 반려동물 콘텐츠의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댓글이나 리뷰를 보면 울게 된다는 것이다. 그날 하루 재밌게 놀고 건강했다는 내용이 올라와도 댓글에 먼저 간 자신의 반려동물이 생각났다고 적혀있으면 울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상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공동의 보호자가 되기 때문에 서로를 응원하고 그들의 반려동물을 사랑하게 된다.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오늘 하루 기억이 행복하길 바란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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