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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위한 휴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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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2. 12. 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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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다. 우리 집 강아지를 보더라도 365일 일을 하지 않으니 법적으로 휴가를 보장해 줄 필요가 없다. 물론 반려동물의 입장을 들어봐야 공평하겠지만 집 지키기를 가장한 택배 아저씨한테 짖기, 아침에 일어나 문안 인사인 듯 손을 핥지만 결국 밥 달라는 의사표현,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자신의 배를 내어주지만 성에 찰 때까지 안 만지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뒷발차기 등등.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도시에서는 쓸 수 없는 천연 비료 생산뿐이다. 하지만 365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접 프리패스 견상(*사실 인상의 인은 도장인(印)이다)이기 때문에 모든 단점은 상쇄되고 조건 없이 채용될 뿐이다.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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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맥스는 반려인 케이티가 출근하면 하루 종일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하지만 다른 반려동물들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반려인이 주고 간 사료는 치워버리고 냉장고를 열어 통닭을 먹어치우거나, 새장을 열고 나와 선풍기와 TV를 이용해 증강현실 비행을 즐기거나, 빠방 한 앰프로 하드록을 즐기는 등 제목 그대로 이중생활을 즐긴다. 이렇게 생각하면 반려인이 없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반려동물의 휴가를 위해 자주 집을 비워줘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한 입만 빼어먹는 라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재미있 듯 제한된 조건과 시간이 재미를 보장해주기에 반려인들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사실 반려동물이 내가 나가도 분리불안을 겪지 않고 재밌게 논다면 아쉬움 보단 안심하는 게 반려인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바람을 담은 판타지가 이 영화이다.

 

여기서 '반려동물에게 휴가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자문자답해보면 반려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일 테니 반려인이 휴가를 사용하게 되면 결국 그게 반려동물들에게도 휴가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에게 휴가란 무엇인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잠시 멀어진다는 것은 공통이다. 잠시 멈춰서 소진되었던 활력을 재충전하거나, 그간 걸어온 길이 정말 내가 원했던 길인지 아니면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보고 새로운 도전을 찾거나 각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반복되는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시간이 휴가의 기본 속성이라고 합의한다면, 반려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반려동물과 휴가를 떠나는 건 특별 x행복의 곱셈으로 보장되는 최소 1+1의 거절하면 손해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보장된 건 죽음과 세금뿐이다. 왜 반려동물을 위한 휴가는 없는지 영화를 통해 알아보자.

 

 

1. EXPEDITION HAPPINESS(행복 원정대) 

 

영화<행복 원정대 - 알래스카에서 멕시코까지(2017)>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 원정대>는 스쿨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해 여자 친구와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이다. 사실 지금은 유튜브 채널만 조금 찾아봐도 반려동물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는 반려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면 반려동물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려면 광견병 항체 결과 증명서, 내장형 마이크로칩 이식, 동물검역기관이 발행한 사전 수입허가 증명서, 수의사로부터 발급받은 건강진단서 등 관련 서류가 필요하며, 기내 반입 시 케이지 포함 7~8kg 내외, 단두 종이나 맹견류는 제한되는 등의 관련 정보를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유튜브<우유의 지구별여행기, 달려라 달리, 순무는 여행중>

 

여권과 돈만 있으면 큰 문제가 없는 인간에 비해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약 전문 사이트 부킹 닷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반려인들의 경우 반려동물을 자녀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55%로 과반수가 넘었다고 하니 이 정도 수고는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 원정대>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고 나면 '아, 나도 언젠가 저렇게 캠핑카를 타고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지'하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처럼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추억으로 남는다는 여행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분명 '집 나가면 (개) 고생이다'라는 말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선조께서 만든 속담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대부분의 반려동물은 아픈 상태를 참거나 숨긴다는 것이다. 그저 반려인이 좋아서 따라온 여행이기 때문에 자신이 아프면 함께하는 시간이 짧아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 원정대>의 원래 여정은 알래스카에서 남미까지였지만 반려견 루디의 건강이 나빠져 멕시코에서 끝나게 된다.

 

 

출처 : Facebook<@expeditionhappiness>

 

 

루디의 건강이 우선이기에 비행기로 집에 가기로 했죠. 여행을 멈춰야 한다는 게 처음엔 무척 슬펐지만 곧 우리에게도 잘된 일이라고 느낍니다. 매일 이동하는 건 너무 벅찼고, 무엇이 우릴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지 못했죠. 긴 여행을 마칠 무렵 우리가 얻은 답은 예상과 무척 달랐어요. 세상을 여행하는 자유를 실컷 누렸는데 지금 원하는 건 정착뿐이거든요.

 

 

영화 속 주인공 펠릭스와 모글리는 자전거 세계여행 중 만나 베를린에 정착한다. 집도 있고, 서로가 곁에 있고, 친구도 있고, 개도 있는 없는 게 없는 삶이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해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떠한 일정도 정하지 않고 캠핑카를 타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있고 싶은 만큼 지내며 여행을 만끽한다. 영화 속 풍경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들은 행복을 기대보다 초과해서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행복은 사실이다.

 

 

매일 새로운 걸 보고 경험하는 게 우리 각 생각하는 여행의 장점이에요. 하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가족과 함께 다녀서 행복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고통과 국경을 넘기 위한 까다로운 절차,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버리는 고장 난 차 등 현실의 어려움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은 반려견이 아플 때다. 다리를 다쳐 철심을 박거나 더위에 쓰러지거나 긴 여행으로 인한 건강 악화(기생충 감염, 위염)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루디도 여행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매일 이동하는 걸 싫어해요. 더위에는 익숙해졌지만 일상이 그리운 거죠. 길에서 긴 시간을 보낸 끝에 우리도 그렇다는 걸 깨닫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매일 새로운 걸 겪는 게 너무 신났는데 지금은 버거울 때가 많아요. 


출처 : Facebook<@expeditionhappiness>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많아지면 그건 여행이 종착지에 왔다는 신호일 것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 특별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경험이지 않을까? 덤으로 일상이 지루해지고 지칠 때 떠올릴 수 있는 추억까지 챙겨주니까 말이다. 반려견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고마운 건 여행의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진부한 말도 한 번쯤은 의심 없이 믿어보고 싶어 진다. 어쩌면 얼마 전 아기를 출산한 행복 원정대의 소식을 듣고 그들의 여행은 끝이 난 것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루디와 함께 북아메리카를 누볐던 버스에는 이런 글귀가 액자로 걸려있었다. 

 

 

Home is where I'm with you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여행을 떠나서도 언제나 집이기에 여행은 못 가더라도 집을 통째로 이동시키는 행복을 찾는(아니 만드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2. 내 친구 와사오, A Dog's Way HOME

사실 <행복 원정대>만 본다면 반려동물을 위한 휴가는 없지만 가족인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족 휴가는 있다로 제목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 유기는 일 년 중 여름휴가철에 가장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2019년 유기동물 수는 월평균 1,000마리 미만이던 숫자가 7~9월에는 13,000~15,000마리 정도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철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갈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나왔다가 넌 가족이 아니라며 동물들이 버림받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버린 사람들에겐 300km 떨어진 곳에서 옛 주인을 찾아온 돌아온 백구가 공포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제주도가 유기동물 안락사 비율 1위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사오-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견> 정도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와사오는 곰과 싸워 이긴다.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어렵고,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들한테는 비추천이다. 주인공 남자아이가 아침 드라마 민폐 주인공급이다.

 

<베일리 어게인>을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하는 영화이다. 단순히 주인 바라기 충견 이야기가 아니라 왕 큰 새끼 고양이와의 우정도 잘 그리고 있다. 나는 강아지파가 아니라 고양이 파라고 선언한 분들도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영화 <내 친구 와사오(2010)>, <A Dog's Way Home(2019)>도 먼 길을 돌아 주인에게 찾아온 개의 실화를 담고 있다. 반려인들을 위한 영화라 길거리를 떠도는 주인공 개들이 심하게 고통받고 처절하게 고생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지만 실제론 더욱 비참한 나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건 그만큼 이런 이야기가 기적처럼 드물기 때문이다. 주인을 찾아 도망친 개들의 대부분은 붙잡혀 식용으로 팔려가거나 산짐승에게 잡아 먹히거나 영양결핍으로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반려동물을 위한 휴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분노보다 가슴이 아픈 건 자기를 버린 주인을 끝까지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갔을 동물들 때문이다. 최근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고 한다. 법 때문이라도 더 이상 쓰레기 버리듯이 동물들을 유기하는 사람이 나오질 않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그럴 사람들이 쉽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시대가 오길 기원한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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