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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사라져가는 호랑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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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2. 12. 3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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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검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십이지의 세 번째 동물로 사악한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두려워하면서도 우러러보았던 이 동물은 단군신화부터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옛날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압운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호랑이와 곶감’, ‘해와 별이 된 오누이와 호랑이’처럼 호랑이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설화도 많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제 전 세계에서 5천여 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1급(CITES 야생동물 보호 협약)으로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호랑이와 같은 혈통의 아무르호랑이는 극동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 극소수만 생존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가 십이지의 용처럼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 호랑이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답은 영화<대호, 2015>에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제에 의한 무차별적인 남획이 그 원인이다.

 

 

 

 

영화<대호>는 1920년 일제강점기,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포수 천만덕과 몸무게가 400kg이나 되는 거대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천만덕은 아내를 잃고 포수를 그만두었다. 그는 아들과 산에 약초를 캐며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이때 일제가 해수구제정책을 펼치면서 호랑이와 늑대, 표범과 같은 맹수를 무분별하게 잡아 죽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대호를 잡기 위해 천만덕을 강제로 끌고 온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실제로 <조선휘보>에는 ‘조선에 있어서의 맹수 피해 및 그 예방 구제’에는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피해 및 구제 기록이 있다. 1915년에는 구제를 위해 경찰과 헌병 3321명, 사냥꾼 2320명, 몰이꾼 9만 1252명이 총 4220일 동안 동원 됐다고 나온다. 그 결과 한 해에만 호랑이 11마리, 표범 41마리, 곰 261마리, 늑대 122마리가 죽었다. 한국 남부에서의 발견된 마지막 호랑이의 기록은 한국일보 1980년 1월 26일에 게재된 1921년 대덕산에서 사살된 호랑이 사진이다. 일본이 남긴 <조선휘보> 기록에는 1940년이 마지막 해로 기록되어있다. 영화<대호>는 아마 대덕산에서 발견된 마지막 호랑이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가족을 잃은 천만덕과 그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동족 모두를 잃은 대호 간의 서글픈 연대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배경이 나라를 빼앗긴 조선이라는 것은 동물과 사람 모두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지만 멸종된 동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도서<총, 균, 쇠>에서 나오다시피 지구에 살았던 대부분의 거대 동물(인류보다 크고 해가 되는)은 인류가 그 땅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했다.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공교롭다’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록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멸종위기 동물은 1989년 92종에서 2018년 267종으로 290%가량 증가했다.(환경부, 환경통계연감) 어쩌면 멸종위기 지정 동물이 완전히 멸종이 돼서 종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될 시기가 올지 모른다.

 

 

 

 

도서<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기획 및 편집을 맡은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의 이항 교수는 후기에서 ‘조선전기 포호정책 연구’를 언급하며 사실 호랑이 포획 정책은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고 한다. 호랑이의 개체 수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급감했고, 조선 말기에 낮은 개체 수가 유지되다가 일제의 결정타를 맞고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대호>에 나온 것처럼 해수구제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한국인 사냥꾼이었다. 일제 때문에 한국 호랑이가 사라졌다고 책임을 탓할 시기는 지났다. 앞으로 멸종위기 동물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고민할 시기인 것이다.

 

최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의 한국호랑이 사육장에서 5남매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화재가 됐다. 2020년에 이미 ‘태범’과 ‘무궁’이 태어났으니 7남매의 대가족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은 ‘아름’, ‘다운’, ‘우리’, ‘나라’, ‘강산’. 30년 만에 자연번식에 성공했다는 대목에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육사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호랑이 입장에서는 자기네를 몰살 시켜놓고 이제 와서 호텔을 제공한다고 기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1.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2012>는 주인공 파이가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와 함께 배를 타게 되면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 소설을 보면 주인공 파이가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이 동물원을 운영했던 내용이 영화보다 자세히 나온다.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면 번식을 하고 탈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래의 양이 너무 많거나 횃대가 너무 높거나, 여물통이 너무 낮아도 안 된다. 인위적으로 야생과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상업적인 동물원이었다면 호랑이들이 번식을 포기하고 멸종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는 공존의 가치를 알려주고, 동물들에게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생태주의 동물원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예이기도 하다.

 

 

 


 

 

2.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2011>

 

 

영화<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2011>는 망해가고 있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그리고 있다. 아내를 잃고 상심에 잠긴 벤자민은 벼랑 끝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는 이유만으로 환상적인 자연환경의 시골집으로 이사한다. 다만 엄청난 대지와 완벽한 구조의 집을 얻기 위한 조건은 동물원을 함께 인수하는 것. 남아있는 직원들을 포함해서. 동물원이 망한다면 남아있던 멸종위기 동물들은 사라지고, 직원들은 실업자가 되는 또 다른 벼랑 끝이다. 동물에 대해 잘 몰랐던 벤자민은 아이들과의 새 출발을 위해 동물원을 되살리는 걸 모험이라 생각하고 도전한다. 그의 모토는 “미친 척하고 딴 20초만 용감하면 된다”. 그는 그 20초의 용기로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고, 동물들을 만나 평생 남을 아름다운 모험을 경험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인수한 동물원에는 17년을 산 뱅골호랑이 스파가 있다.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고, 수의사를 부르는 비용은 비싸고, 얼마나 더 살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벤자민은 스파에게 약을 먹으면 젊은 호랑이와 데이트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계속 말을 건다. 함께 살아가자고. 그러나 계속 쇠약해지는 스파를 보고 직원들은 안락사를 불러야 한다고 벤자민을 설득한다. 벤자민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희망을 갖자고,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스파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잘 알고 있다. 그의 아내가 그렇게 떠났기 때문이다. 스파의 죽음이 아내의 죽음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는 스파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던 것이다. 그러나 생은 죽음과 함께 걸어간다. 죽음이 곁에 있다고 두려워서 걷는 걸 포기한다면 평생 모험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벤자민은 스파를 고통에서 해방 시켜주고 스스로도 고통 속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온다.

 

 

영화<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나오는 동물원 포스터. 벤자민의 아들이 그린 스파 캐릭터를 사용했다.

 

모험의 결과는 중요치 않아요. 결과가 전부는 아니니까. 
지금부터는 전부 보너스인 셈이죠.

 

 

동물원을 재개장하면서 벤자민이 함께 노력한 직원과 가족들에게 하는 말이다. 인류가 환경을 자신에게 맞도록 바꾼 뒤로 동물들은 가축화가 되어 넘치는 개체 수로 살아남거나, 멸종위기종이 되거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그걸 비난한다는 건 모순이라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은 동물들을 몰아냈던 시기와 또 다른 시대이다. 인류는 충분히 공생을 지향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 벤자민이 동물들과 공생을 위해 동물원을 사들였듯이 인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인류가 이미 비싼 빚을 지며 지구를 사들였기 때문에 모든 생명을 위한 재개장을 준비할 의무가 있다. 물론 불어난 빚이 기후위기로 찾아와 모든 게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전부는 아니니까, 보너스가 있든 없든 공생이라는 모험에 발을 들여놓는 게 중요하다. 미친 척하고 200년 아니 딱 20년 만이라도 기틀을 잡아 놓는다면 놀라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국은 늦었지만 제4차 야생생물 보호 기본계획(2021~2025)을 통해 동물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야생생물법, 동물원수족관법, 자연환경보전법 등을 개정하여 “야생생물과 국민이 공존하는 건강한 한반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더는 무분별하게 상업과 유흥을 위한 동물원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12년 뒤에는 사라져가는 호랑이를 그리워하는 글이 아니라 멸종위기에서 사라진 호랑이에 대한 글을 쓰기를 바라며 새 해 소망을 빌어본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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