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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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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of 2023. 1. 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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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약 70여 두라고 한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본 적이 있다면 진귀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지르거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이다. 집중해서 시각장애인 보호자를 안내하고 있는 안내견의 집중력을 만지거나 소리치거나 먹을 걸 줘서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4월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달이다. 그리고 세계 안내견의 날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4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은 세계 안내견의 날로 지정돼 있다. 2022년 기준으로 4월 27일. 안내견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안내견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시각장애인 도우미견(Guide Dog) 이외에 농인 도우미견(Hearing Dog), 지체장애 도우미견(Service Dog), 치료 도우미견, 노인 도우미견이 있다. 농인 보호자와 함께 지내며 일상의 여러 가지 소리(초인종, 화재경보, 아기 울음 등)를 대신 듣거나, 지체장애인의 휠체어를 끌어주는 등 잔심부름을 하거나, 우울증 등 정서적인 안정을 주거나, 노인들을 돌봐주며 동반자가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리틀 큐 포스터(출처 : 다음 영화)
 

다음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삶을 다룬 영화 <리틀 큐, 2019>에 나오는 실제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함께 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저는 디아나(안내견)를 제 손주보다 더 아낍니다. 디아나는 말대꾸하지 않으니까요.(웃음) 안내견에게 한마디 해야 한다면 고맙다고 할 거예요. 디아나만이 저와 24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예요.

 

 

가가(안내견)는 우리의 첫 안내견인데요, 개리(보호자)와의 유대는 매우 끈끈합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발견했는데 옆에 있던 분이 그러더군요. 원래는 앉을 자리가 없었는데 안내견이 불쌍한 눈빛으로 옆 사람을 쳐다보니까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고요.

 

 

 

캔디(안내견)를 만난 후 삼 일 만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어요. 캔디는 뛰쳐나가거나 도망치지 않고 줄을 끌고 제가 건물 밖으로 나가도록 안내했어요. 그때 이 아이 없이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랄리(안내견)는 정말 저를 보호할 수 있어요. 같이 있을 때 한 번도 위험에 처한 적이 없어서 걱정 없이 순조롭게 외출할 수 있어요.

 

 

 

저희 둘(시각장애 커플)이 한참 고민한 끝에 위험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길을 건너는 도중에 갑자기 전동삼륜차가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때 망고(안내견)가 머리로 제 다리를 막고는 힘껏 뒤로 밀었어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죠. 결국 삼륜차가 다가와 안내견의 머리에 부딪혔어요. 그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요.

 

 

 

사궈(안내견)와 있으면 외출이 너무 편리해요. 얘는 우리 가족이고 저의 아이입니다. 저의 눈이기도 하죠. 저에 대한 충성심은 제 친자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거예요. 고마워. 엄마에게 행복을 가져다줘서.

 

 

 

안내견들은 어릴 때부터 위탁가정에 맡겨지고 은퇴 후에도 관례에 따라 원래의 위탁가정에 다시 돌아옵니다. 제가(시각장애인) 계속 키우지 않고 위탁가정에 돌려보내는 것은 안내견의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위탁가정 보호자)이별하는 순간이 가장 아프죠. 딸을 시집보내는 것과 같은 심정일 거예요.

 

 

 

(안내견 훈련 감독)강아지가 태어나서부터 저희에게 안내견 훈련을 받고 또 시각장애인과 매칭 훈련을 받은 후에, 제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그들이 서로를 돌볼 준비를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때예요.

 

 

 

인터뷰 내용만 봐도 안내견과 사람 간의 유대감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영화는 추천하지 않는다. 감동을 위해 억지 설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장면만 들면, 주인공인 시각장애인 보호자 리가 수술을 위해 안내견 큐를 때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리는 차에 타기 직전 큐의 목줄을 풀더니 큐가 좋아하는 공을 도롯가에 멀리 던지고는 재빨리 차에 타고 떠나버린다. 신나게 공을 쫓던 큐가 뒤늦게 보호자가 탄 차를 쫓아간다. 큐는 도로를 달리다 차에 치일뻔하기도 한다. 한참을 달리다 리와 함께 탔던 여동생이 큐를 발견하지만, 리를 위해 애써 모른척한다. 결국 큐는 차를 쫓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 버린다.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이 아니라고 해도 개가 위험하게 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길가에 세우고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이러한 억지 설정은 극적인 장치를 위해 계속 반복된다. 안내견의 보다 정석적인 삶을 그린 영화를 찾는다면 <퀼, 2004>을 추천한다. 논픽션 그림책 <맹인안내견 퀼의 일생>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리틀 큐> 또한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안내견의 날개 모양 점만 같을 뿐 내용은 다르다.

 

 

영화 퀼 포스터(출처 : 다음 영화)

 

 

영화 퀼을 보면 안내견이 어떻게 성장하고 은퇴하는지가 잘 나와 있다. 안내견의 생애를 4번의 이별로 잘 표현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 안내견 퀼처럼 일반 가정집에서 태어나지는 경우는 드물다. 안내견에 적합한 성품과 건강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에 안내견 훈련을 받은 개 중에서 종견(수컷)과 모견(암컷)을 선발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분만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퀼은 정말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1호 명예 안내견 홍보대사가 된 정재형. 해듬이와 퍼피워킹하고 있다.(출처 : 정재형 인스타그램)

 

안내견 후보 강아지들은 생후 8~9주가 지나면 퍼피워킹을 하기 위해 퍼피워커의 집으로 위탁되어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퀼 또한 45일이 지나자 어미견에서 떨어지는 첫 번째 이별을 맞이한다. 퍼피워커는 무보수 봉사로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1살이 될 때까지 돌보게 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강아지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직업을 갖추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반려견과 지낼 수 없고, 미취학 자녀가 없어야 한다.

 

1살이 된 이후에는 안내견 훈련기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훈련을 통해 안내견으로서의 적합성 유무를 테스트하게 된다. 훈련기간은 대략 6~8개월로 배변, 식사 등의 기본 훈련과 복종훈련, 지적 불복종훈련을 하게 된다. 이중 지적 불복종훈련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보호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지적 불복종은 위험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보호자의 명령과 관계없이 멈추거나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는 것을 말한다. 퀼의 경우 훈련사의 말에 반나절 기다릴 줄 아는 타고난 인내심을 갖추고 있었다.

 

 

영화에서 훈련사가 안내견의 역사를 설명하며 말했던 폼페이 프레스코 벽화. 사실 시각장애인보다는 거지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힘겨운 훈련과정을 끝내면 대략 30% 정도만이 안내견이 된다고 한다. 안내견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 가정으로 입양된다. 30%에 드는 데 성공한 퀼은 시각장애인 와타나베를 만나게 된다. 곧바로 안내견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4주간의 매칭 훈련을 진행한다. 2주는 훈련기관에서, 2주는 주거지와 주요 주행지역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퀼의 경우 최종 테스트에서 실패해서 졸업하지 못하고 만다. 아직 경계심이 강한 시각장애인 와타나베가 마음을 열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이후 와타나베를 위해 밤늦게 맥주를 사러 자판기까지 함께 걸어가는 등 완벽한 매칭을 통해 졸업하게 된다. 퀼은 훈련사들과 두 번째 이별하게 된다.

 

실전에 투입된 퀼은 와타나베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순조로운 나날을 보낸다. 물론 와타나베의 어린 아들이 퀼과 친해지고 싶어서 일련의 소동을 벌이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와타나베 가족과 퀼의 관계는 단단해진다. 처음엔 안내견을 반신반의하던 와타나베는 시각장애인들과의 모임에서 퀼의 자랑을 늘어놓으며 팔불출 모습을 보인다. 사진 찍을 때 포즈를 취한다거나 자신이 길을 잃으면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이야기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와타나베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퀼은 다시 훈련기관으로 돌아간다. 퀼은 훈련기관에서 시각장애 안내견의 시범용 개로 활약한다. 하지만 와타나베와 매일 함께 산책하던 나날을 그리워한다.

 

2006년 영국 소동물수의사회에 따르면 가정에서 자란 리트리버의 평균 수명은 12년 3개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내견 활동을 한 리트리버의 평균 수명은 13년 6개월이었다. 가정에서 자란 리트리버 평균보다 안내견이 1년 이상 더 오래 산 것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안내견이 일만 하고 매일 뛰어놀지 못해 불행할 거라는 편견을 지울 근거가 될지 모른다. 아침과 저녁에만 만날 수 있는 바쁜 직장인보다는 제한이 조금 따르지만 매일 곁에 있어 주는 시각장애인 보호자가 더 안정을 준다고 볼 수도 있지 아닐까?

 

 

보호자인 시각장애인 와타나베와 마지막 걸음을 한 안내견 퀼(출처 : 영화 퀼의 한 장면)
 

결국 건강이 악화된 와타나베는 훈련기관을 찾아 퀼과 마지막 산책을 한다. 겨우 30미터. 퀼은 와타나베의 죽음을 끝으로 안내견에서 은퇴해 퍼피워킹했던 가정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퀼의 세 번째 이별이다. 안내견의 경우 대략 10년 정도 일하고 은퇴한다고 한다. 퍼피워킹처럼 은퇴한 안내견을 돌보는 홈케어 봉사도 있다. 안내견의 경우 시각장애인과 매칭이 된 이후에도 사후관리를 통해 건강을 돌보고, 은퇴 후에도 약품과 진료비가 지원된다고 한다. 한평생 봉사를 한 안내견에게 합당한 대우가 아닐까 싶다.

 

가정집으로 돌아온 퀼은 1년 동안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며 평안한 노후를 즐기다 마지막 이별을 겪는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홈페이지에는 안내견 추모관이라는 페이지가 따로 마련돼 있다. 안내견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기리는 곳이다. 사진과 떠난 날이 적혀있고, 게시글을 달 수 있게 되어있다. 다 읽을 필요도 없이 제목만 봐도 눈물이 맺힌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시각장애인은 약 25만 명. 이 중 중증 장애는 대략 3만 7천 명(2019년 기준). 2017년 조사에서 대략 3,400명 정도가 안내견의 도움을 원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두 기관에서 매년 약 20마리 정도만 입양보낸다고 하니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 볼 수 있다.

 

 

로봇 안내견(출처 : UC버클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이러한 안내견의 역할도 줄어들지 모른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로봇 안내견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연구진이 개발하여 논문 사전 공개 웹사이트 <아카이브>에 발표했다고 한다. 개와 같은 네발 달린 구조로 라이다를 통해 장애물을 인식하고, 심도 카메라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위치와 거리를 판단한다. 그리고 안내견과 똑같이 목줄을 하는데 센서를 통해 당기거나 풀어서 모퉁이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향후 스마트폰과 연계하여 GPS를 통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도 안전하게 안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안내견이 주는 위로와 정서적 유대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그리고 안내견이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싶다. 안내견은 단순히 길 찾기 내비게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동행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계속될 것이다. 네 번의 이별을 겪은 퀼이 행복했기를 바라며 세상 모든 안내견의 안녕을 빈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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