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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평화를 만드는 방법?

Contents/pose problems | 문제제기

by SOURCEof 2023. 1. 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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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이 (이곳에 묶여 사는 개들. 요즘 열심히 친구들과 산책 시켜주고 밥을 챙겨주고 있다.)
 

나는 올해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강정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15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이곳에서 ‘피스 파인더(Peace Finder)’라는 세계 평화대학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평화학, 사회운동, 철학, 수영, 요가, 농사 등을 배우며 일상적으로 평화를 가꾸어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몇 년 동안 비거니즘 실천을 하고 동물권 운동을 하던 나로서는 처음 여기서 평화 운동을 접하고 사실 당혹스러웠다. 나는 동물 사체가 있는 식탁에서 논하는 평화는 결코 평화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서는 논비건 생활을 관습적으로 하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며, 반려견을 묶어 키우고 산책도 정기적으로 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광경을 처음 보고 이들이 말하는 평화 운동에 회의감과 실망감이 들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덕이 (이곳에 묶여 사는 개들. 요즘 열심히 친구들과 산책 시켜주고 밥을 챙겨주고 있다.)
 

이 잔인한 세상 속에서 무수히 많은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런 현실을 만들어내고, 또 방치하는 사회에 저항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가치 있음을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난 비인간 동물이 처해있는 현실도 심각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고통의 수준을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다.) 평화를 말하는 곳에서조차 개들이 규칙적인 산책이나 건강 검진 없이 묶여있고, 동물의 사체와 젖과 알이 여기저기 흔히 널브러져 있는 모습, 아무 비판의식 없이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사랑과 평화를 말하면서 가장 약자인 동물의 고통과 착취, 죽음에 기여하고 있는 상황이 슬펐다. 평화 운동 속에서도 비인간 동물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는 인간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고 쉽게 스러지는구나. 지워지는구나. 가슴이 쓰라렸으며 눈물이 나왔다.

 

육식을 일삼고 동물을 방치하는 우리 일상 자체가 전쟁터고, 수용소이며, 학살의 현장이다. 이런 곳에서 평화 운동이 진정 피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소망하는 평화가 무수한 존재들의 희생을 밟고 만들어져도 괜찮을까? 그렇게 얻어낸 평화는 누구만을 위한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꾸만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곳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철저히 자기비판적이며 성찰적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난 가능성을 보았다. 동물권의 관점에서 평화를 말하고, 그를 위한 실천을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다.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고.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 사이의 연결고리를 되새기자고. 우리는 모두를 위한 평화를 위해 연대할 존재들이라고.

 

 

가을이 (이곳에 묶여 사는 개들. 요즘 열심히 친구들과 산책 시켜주고 밥을 챙겨주고 있다.)
 

용기를 내어 나의 의견을 나누었고, 다행히 희망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동물권 담론이 낯섦에도 불구하고 내 의견에 수긍하고 비건 실천 및 반려견 복지를 위한 제안을 내놓았다. 지금은 모두가 동물권 담론 및 비거니즘 실천을 익히려고 애쓰고 있다. 고마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더불어 나도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평화 운동의 잠재력이다. 강정마을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평화 운동’을 직접 가까이서 보면서 운동가마다 지향하는 결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각자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사는 친구 말에 따르면 평화 운동가들 모두가 ‘해군기지 반대’라는 목표로 같은 운동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각자 가장 중시하거나 지향하는 가치들이 가지각색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전쟁과 군대 반대가, 누군가에겐 페미니즘, 환경, 민주주의, 난민, 동물권 등이 가장 중요하다. 평화 운동에 있어서 저마다의 중심점이 있고,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모인 강정마을에서는 서로 대화나 토론, 즉 소통을 통해 ‘평화’라는 것의 의미와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작금의 평화 운동이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며 한계가 크다고 생각한다. 비인간 동물이 평화를 추구하고 보장받을 권리는 너무도 간편하고 당연스럽게 침해될 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차 삭제되기 때문이다. 평화 운동의 가장 기본에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와 실천이 깔려 있다고 믿는다. 이를 이루기 위해 앞서 말했듯 평화 운동 안에서도 다채로운 태도와 실천들이 있고, 그중에는 동물권을 중심으로 한 평화 운동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 운동의 경계는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확장될 것이다. 나 또한 그 과정 중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평화 운동을 하면서도 육식을 하고 반려동물의 삶을 개선하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여러 부분에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을 것이다.

 

 

삼덕이 (이곳에 묶여 사는 개들. 요즘 열심히 친구들과 산책 시켜주고 밥을 챙겨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젠 그들을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이해와 관용의 태도를 가지고자 한다.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강정마을 사람들과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천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그래서 평화의 의미를 넓히고 깊게 만드는 움직임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내가 이곳에서 동물권이라는 평화의 또 다른 이름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고 있으며, 그것이 또 다른 새싹으로 무궁무진하게 자라날 것임을 안다. 저마다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세심하고 열정적으로 교류하는 이곳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감사하다. 폭력의 형태가 슬프게도 다양한 만큼, 거기에 지지 않고 더더욱 알록달록한 평화를 만들어나가며 지구의 모든 생명과 공존하고 싶다. 빠른 미래에 비건 식탁이 자연스럽게 차려지고(벌써 나의 의견 나눔으로 숙소가 비건 구역으로 바뀐 좋은 소식이 있다), 묶여있는 개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우선 오늘은 저녁 식사를 위한 비건 요리를 만들고 우리 숙소에 사는 강아지 가을이를 산책시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함께 힘을 모아, 묶여있는 평화를 풀어주자!

 

 

검돌이 (이곳에 묶여 사는 개들. 요즘 열심히 친구들과 산책 시켜주고 밥을 챙겨주고 있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을 4월에 쓰고 지금 8월에 올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제가 다른 활동가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저따위가… 그래도 되는지… 내가 너무 오지랖 부리나 싶기도 하고 타인이 살아온 방식을 섣불리 평가하고 내 관점으로만 편협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강정마을 사람들은 제 부족한 점도 비난은커녕 다 존중하고 포용해주고 다른 생각을 나누어주었든요. 그 속에서 저는 안정감을 느끼며 성장했고요. 참 감사했어요.

 

하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이 이야기를 그분들과 공유해야겠다고 느꼈어요. 동물권 관점으로 평화운동을 말하고 실천하는 담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정마을 사람들이 저에게 선물해주었던 다양한 관점을 저는 동물권이라는 새로운 혹은 확장된 관점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이 관점에서 작금의 평화 운동의 한계를 말하고 사람들과 논의하며, 더 넓고 깊은 평화, 알록달록한 평화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어요.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물권도 빠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우린 다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고 공유하고 또 그로 인해 피어나는 대화의 과정도 모두 평화 운동의 작은 과정이 아닐까? 살며시 기대해봅니다.

 

아직 제가 좁은 시야로 사람들은 판단하는 건 아닐까 심히 조심스럽고 겁이 나지만, 말했듯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썼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논의하고 싶은 말, 궁금증, 비판점 등등이 있다면 저에게 편히 말 걸어주세요! 모든 의견을 환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숨들매거진 #동물권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비건맛집을 탐방하고 사람들과 떠드는 것을 사랑합니다. 2년 전 가족이 되어준 뽀리와 동네에 묶여 사는 개 쫄랑이, 똘이와 매일 산책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행복하고 존중 받는 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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