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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닭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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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아침, 냉이가 죽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닭장 문을 열어주었고, 나와 짝꿍은 방에 들어가 있었다. 짝꿍이 잠시 밖으로 나가 닭들에게 갔는데, 갑자기 짝꿍이 소리쳤다. ‘냉이야!!!’ 싸늘하게 굳은 채로 누워있는 냉이를 발견했다. 오전 8시쯤이었다. 사람 인기척이 없는 한밤중도 아니고 닭장 바로 옆에 있는 방에 우리가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냉이가 죽어버리다니.. 죽은 이유를 알 수도 없었기에 순간 믿기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기절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파랗게 변해버린 냉이의 얼굴과, 온몸이 경직된 채로 빳빳하게 굳어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온기란 느껴지지 않았다. 한쪽 날개 죽지에 작지만 깊게 파인 상처가 있었다. 이빨 자국이었다. 설마 뱀이..? 쥐가..? 살모사라도 나타나서 냉이를 공격한 걸까? 퇴비통 속의 음식을 훔쳐 먹던 쥐가 갑자기 냉이를 물어버린 걸까? 어떤 동물이 뾰족한 이빨로 냉이의 날개 죽지를 한 방 물었고, 그것이 냉이에게 독이 된 것 같았다. 깊게 파인 상처 안쪽으로 하얗고 분홍빛의 오돌토돌한 살이 보였다. 검은색 털이 아닌 살짝 패인 분홍빛 살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맞다. 마트의 매대 위에 올려져 있는 생닭의 분홍색 살.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들은 이 살점을 부위별로 쪼개어 맛있게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 눈앞에 있는 건 사랑하는 반려닭 냉이의 죽은 사체였고, 아직도 촉촉한 상처 자국은 냉이가 잠시 전만 해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작년 겨울, 냉이의 모습
 

우리는 냉이를 집 앞 화단에 묻어주었다. 냉이를 기억하고자 냉이의 검고 푸르스름한 깃털 하나를 뽑으려 했지만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있는지 아플 것 같아 쉽사리 뽑지 못했다. 결국 가위를 이용했다. 흙을 깊게 파서, 그 안에 냉이를 놓고 빨간 꽃 한 송이와 함께 흙 속에서 잠들도록 했다. 냉이가 묻힌 작은 무덤 하나가 생겼다.

 

냉이는 작년 3월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작은 병아리로 우리 집에 왔다. 한쪽 발등이 굽은 장애가 있었지만 다른 닭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놀았다. 서열 1위였던 돌이를 누르고 대장직을 맡기도 했고, 그래서 담비가 나타났을 때 암탉들을 보호하려고 앞장서서 막아내려다 당한 걸까? 냉이를 죽인 범인은 담비였다. 냉이가 죽은 다음날 아침 비슷한 시각에 담비가 나타났다. 그걸로 담비인 것을 알아냈다. 주로 무리 지어 다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냥을 다니는 담비. 멸종위기 2급 생물이라 조치를 취하지도 못 한다. 자기보다 약한 생물을 장난으로 물어 죽이고 가버린다. 닭을 키우는 시골 농가에선 흔한 일이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닭장도 찢고 들어오는 게 담비다. 우리는 냉이 하나만 죽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담비.. 사진만 봐도 밉다.
 

냉이야, 우리에게 와주어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마웠어. 굽은 발등으로 열심히 걷고 땅을 파고 횃대에 올라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렸지. 예민한 성격을 가졌지만 품에 안아주면 고요하게 눈을 감고 우리의 손길을 받아들이던 너의 모습이 생각이나. 경계하며 옆으로 총총 걷던 모습도, 알을 낳거나 음식을 먹는 암탉들 곁을 지키며 꼬끼오 울던 너의 모습도. 맛있는 것을 발견하면 늘 노래를 불러서 암탉들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곤 했지. 키가 크고 윤기 나는 검은색 털에 에메랄드빛 무늬가 멋진 냉이야! 오늘도 따뜻한 햇살을 느끼려 마당에 앉아 있다가 붉은 백일홍이 잔뜩 펴 있는 화단을 보며 너를 떠올렸어. 다음 생애에는 더 건강하게 태어나 넓은 들판을 뛰어놀며 좋아하는 풀과 곡식, 벌레 마음껏 먹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할게.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안녕.

 

 

냉이의 무덤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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