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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의 배려심은 어디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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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라면 누구나 번식 본능이 있다. 끊임없이 자손을 생산함으로써 자신이 죽더라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다.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다. 나는 우리 집 닭들에게서도 그들의 번식 본능을 읽었다. 특히 수탉이 그랬다. 우리 집 수탉인 돌이는, 다른 두 암탉을 지키는 수호자다. 특히 암탉이 알을 낳고 품는 일을 잘 수행하도록 보조한다. 이런 돌이의 행동을 지켜보다 보면 꽤 재미있는 지점이 많다. 언뜻 보기엔 배려심과 리더십 강한 늠름한 수탉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자손을 번식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첫째, 먹을 것을 암탉에게 양보한다.

닭들은 먹을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가 닭장 근처로 가면 닭들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저 멀리서 뛰어 온다. 정말 배고플 때는 방문 앞까지 와서 울기도 한다. 우리 집 부엌 창문이 뒷마당과 연결돼 있는데, 부엌에서 오래된 알루미늄 창문을 '삐-이익'하고 열면 그 소리를 듣고 또 어디선가 달려온다. 우리가 종종 부엌 창문을 통해서 먹을 것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을 것을 받으면 대부분 암탉 몫이다. 먹을 것이 든 그릇을 건네면, 돌이는 살짝 맛 본 후 '꼬꼬꼭ㄹ꼬꼬' 울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그 신호를 듣고 암탉들이 달려와서 허겁지겁 먹는다. 돌이는 한 발 물러선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람이 옆에 있는 동안에는 경계하듯 먹지 않다가, 내가 자리를 뜨면 그제야 암탉들 옆에서 소심하게 집어 먹는 것이다.

 

둘째, 알을 낳는 암탉 옆에 서서 기다린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번 목격했다. 죽은 냉이는 살아있을 때 더 자주 그랬다. 암탉들이 나무 상자에 들어가서 몸을 웅크리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근처에 돌이가 꼿꼿이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리고 알을 낳은 암탉이 일어서서 나오면, 돌이는 '꼬끼오~'하며 울기 시작한다. 자식을 낳았다는 기쁨 때문일까? 언제는 또 암탉들이 알을 낳는 나무상자에 혼자 올라가서 이리저리 살피고 발로 밟으며 안전한지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암탉들이 알은 계속 낳는데 병아리가 부화하질 않으니 상자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걱정이 되나 보다. 심지어 우리가 알을 깨어주면 허겁지겁 먹는 암탉들을 보고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셋째,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한다.

닭들이 가장 익숙해하는 사람인 우리가 근처로 갈 때도 돌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가도, 사납게 째려보며 싸움을 걸기 십상이다. 그럴 때 절대 뒷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뒤로 돌아가려는 순간 공격한다. 맨발로 가면 맨살을 꼬집힐 수 있기 때문에 닭장 근처로 갈 때는 반드시 양말을 신고 간다.

그러다 집에 친구가 놀러 오면, 닭들에겐 낯선 사람이다. 경계심이 더해지면서 그  사람을 공격한다. 특히 암탉을 만지려고 할 때는 더 심하다. 우리가 쑥이를 안아주려 들어 올리면 돌이는 우리가 쑥이를 데려가기라도 하는 줄 아는지 매섭게 쫓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사나운 돌이도 배고플 땐 순해진다. 

 

 

매서운 눈으로 공격할 태세를 갖춘 돌이  ⓒ다님

 

 

넷째, 끊임없이 암탉의 등에 올라탄다.

짝짓기 행위이다. 옆에 사람이 있든 없든, 때를 노리고 암탉의 목깃을 꼬집으며 등에 올라탄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쑥이와 잎싹이의 벼슬 아래쪽 털이 꽤나 빠져있다. 돌이가 하도 꼬집은 탓이다.

 

다섯째, 암탉의 보디가드 역할을 수행한다.

닭들이 노는 방식을 지켜보다 보면, 보통 여기저기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암탉이다. 수탉은 근처에서 망을 본다. 쑥이나 잎싹이가 갑자기 어느 곳에 가려고 하면, 돌이가 뒤따라 쫓아가서 함께 바닥을 쪼다가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암탉들은 경계보다는 먹을 것을 찾는 데에 더 집중한다.

 

주로 수탉들의 일상에서 이런 모습들이 빈번하지만, 그렇다고 암탉들에게 번식 본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안락에 충실하는 듯 보여도 새끼가 생겼을 때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점이 수탉과 다르다. 수탉은 암탉이 잘 먹고 안전하게 알을 낳도록 돕는다면, 암탉은 그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해서 야생에 적응한 성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돌봄 역할을 수행한다. 알을 품기 좋은 둥지에 알을 낳고, 일정량의 알이 모이면 21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품고 있으며, 병아리가 태어나면 병아리들이 잘 먹고, 잘 파고, 잘 씻을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 모든 것들이 암탉의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이다.

 

이런 닭들의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번식 본능을 비롯한 그들의 다양한 행동양식을 보며 우리 인간들과 꽤 닮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결국 모든 생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본은 동일해 보인다. 깨끗한 자연과 안락한 집, 그리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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