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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을 삼킨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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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이가 아팠다. 아침부터 속이 안 좋은지 토를 할 것처럼 꿀렁거리길래 공복이 길어 그런가 했다. 침대에 녹아내린 듯한 몸을 겨우 일으켜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줬다. 여느 때와 같이 와구와구 밥그릇을 비운 고진이는 얼마 못 가 먹은 것들을 다 토했다. 먹는 족족 분수처럼 토가 쏟아졌다. 주눅 든 고진을 들쳐메고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별 증상을 꼼꼼히 기록한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촬영을 하자고 하셨다. 고진의 장에는 2.4cm 크기의 둥글납작하며 딱딱한 무언가가 자리해 있었다. 고진이가 좋아하던 방울 공 속 쇠방울이었다.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놀라 “똥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나요?” 물었고, 아마 걸려서 못 내려갈 거라고 하셨다. 고진이는 곧바로 야간 수술에 들어갔고, 3일 동안 입원하게 됐다. 단순히 소화제를 처방받거나 수액을 맞는 게 전부일 줄 알았는데. 고진을 병원에 두고 홀로 집에 오는 마음이 헛헛했다. 나와 고진과 감래. 셋이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우리 집. 고진이가 없으니 눈에 띄게 허전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고진과 감래는 항상 내게 몸을 붙여온다. 옆구리와 팔 사이에 쏙 들어와 엎드리고 얼굴을 겨드랑이 위에 턱 하니 올리거나 옆으로 누운 내 품속에 들어와 안긴다. 고진이는 체온을 좋아하는 강아지인데. 살을 부대끼며 자야 안심하는 강아지인데.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깜깜한 병원의 케이지 한 칸에서 홀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할 고진이가 눈에 밟혔다.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병문안을 갔다. 목에 넥카라를 차고 얇은 팔에 주삿바늘을 꽂은 고진이는 무지 수척해 보였다. 수액을 맞는 중이라 유리창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고진은 나를 발견하고 낑낑댔다. '엄마, 나 꺼내줘. 나 집에 갈래.' 고진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너졌다. 한번 쓰다듬지도 못하고 냄새를 맡게 해줄 수도 없던 짧은 병문안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의사선생님께는 오히려 고진이가 더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퇴원하는 날 오겠다고 했다.

 

 

병문안 갔던 날 꺼내달라며 낑낑거리던 고진

 

어쩌면 고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내게 시선을 고정하는 고진이를 등지고 멀어지는 그 일을 다시 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진이와 감래를 데려온 후 엄마는 자주 걱정했다. “미성아, 나중에 고진이랑 감래가 먼저 떠날 거야. 그 상실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둬.” 엄마는 원래도 필연적인 이별을 알기에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나는 짐짓 강인한 척 말했다. “엄마, 나는 오히려 고진이랑 감래를 먼저 떠나보내면 그제야 맘이 놓일 것 같아. 평생 곁에서 지켜줄 거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 거야.” 그건 겪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잘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뿐인데도, 다시 만날 걸 아는데도, 한 생명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런 건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님을, 온전히 겪어내고 통과해야 하는 상실임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고진이가 퇴원하는 날, 반차를 썼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데려갈 수 있다면 연차 따위 아깝지 않았다. 꼬리를 마구 흔들며 왜 이제 왔냐고 히융히융 소리 낼 고진이가 눈앞에 그려졌다. 꼬옥 안아줘야지. 오래 쓰다듬어 줘야지. 눈물은 정성스레 닦아줘야지.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넥카라를 찬 고진을 내 품에 안겨줬다. 고진이는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나한테 삐진 건가? 말을 걸어 보았지만 고진의 시선은 병원 직원들을 쫓아다녔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가까이 오면 그쪽으로 몸을 틀고 힘껏 꼬리를 흔들었다. 물어보니 회복이 된 후부터는 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며 걷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고 한다. 퍼즐이 맞춰졌다. 원체 사교적인 강아지로서 짜릿한 경험이었을 거다. 계속 새로운 강아지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드니 얼마나 반가웠을지. 돌아가면서 이쁘다, 잘생겼다, 쓰다듬어주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얼마나 즐거웠을지. 배는 좀 아프지만, 적성에 딱 맞는 병원 생활이었던 거다.

 

 

퇴원하는 날, 내 품에 안겨 병원 선생님들만 바라보는 고진

 

마치 벌써 집에 가냐고 묻는듯한, 캠프가 너무 짧아 아쉬운듯한 고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고진이가 집에 오니 그제야 집이 우리 집 같았다. 비록 넥카라를 차고 감래한테 치대다가 감래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었지만, 넥카라가 있든 없든 내 팔을 베고 자야겠다고 주장해서 내 목은 꺾일 지경이었지만. 그 후로 고진이는 빠르게 회복했다. 넥카라도 벗고 배에 남았던 실밥도 풀었다. 평소처럼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쌀 때마다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무엇보다 원래도 좋아했던 병원을 더더욱 좋아하는 강아지가 됐다. 병원에 가면 모두가 우리 고진이 왔냐며 반갑게 맞아주기 때문에.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는 체를 하며 병원을 한 바퀴 누벼야 직성이 풀리는 사교계의 황태자가 되어 버렸다. 비록 한 달 월급에 가까운 병원비를 내야 했지만, 별의별 걱정을 다 하며 잠 못 이뤘지만, 감동적인 재회를 상상한 게 민망할 정도의 데면데면한 재회였지만. 고진이가 즐거웠다니 됐다, 됐어.

 

 

 


글쓴이: 미성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고진이와 감래와 산책을 합니다.

가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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