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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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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점박이 강아지 ‘고진’, 인절미색 강아지 ‘감래’가 있다. 이제는 함께인 게 너무 당연한 나와 고진, 감래. 고진이와 감래가 나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2020년 3월 함께 살던 친구와 글쓰기 수업을 다녔었다. 친구는 종종 고향에 있던 강아지들을 그리워하며 울었다. 나에게도 강아지와 함께 사는 행복을 알려주고 싶다며 글방에 가는 길목의 펫숍 앞에서 한참을 멈춰있곤 했다. 생명을 사고파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던 나는 항상 친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지나쳐왔다. 그럼에도 마지막 수업이 다가올수록 몇 주째 같은 자리에 있는 점박이와 인절미에게 맘이 쓰였다.

 

하루는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갔다. 인간이 아닌 포유류와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그저 바라만 봤다. 만지기라도 하면 깨질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망설이며 바라만 보는 내게 사장님은 친한 친구네 강아지가 낳은 새끼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설에 4형제로 태어났다고. 둘째랑 셋째는 그 집에서 키울 거고. 점박이가 첫째, 인절미가 막내라고. ‘아, 그럼 강아지 공장에서 온 애들은 아닌 건가?’하는 생각에 경계심이 풀어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강아지들을 꺼내고 만져보고 다시 넣었다. 한 아주머니는 점박이를 한참 안고 있더니 말했다. 사람 너무 좋아한다고, 데려가고 싶다고. 집에 개가 네 마리가 있지만, 너무 예쁘다고.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분도 물론 그분의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나는 왠지 그 집에 가게 두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점박이는 ‘고진’, 인절미는 ‘감래’가 되었다. 그 후로 1년 동안은 최대치의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나를 휩쓸었다. 고진, 감래는 존재 자체로 나에게 웃음을 줬다. 밥 먹는 모습만 봐도 기특했고, 물 마시는 소리만 들어도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아플 땐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걸 알아챌 순 없을 땐 아직도 개 언어 번역기가 없다니 한탄했다. 다만 친구와의 관계는 멀어졌다. 친구는 처음 데려왔을 때의 다짐과 달리 현실적인 돌봄을 수행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나는 친구의 책임감 없는 태도에 화가 났고, 우리는 자주 다퉜다. 둘 다 지쳐갈 무렵 친구는 떠났다. 친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쉽게 생명을 선택하고 또 쉽게 포기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 제일 부끄러울 것 같기에. 나까지 그 행동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나 혼자 고진과 감래를 키우게 됐다. 두 생명을 오로지 혼자 책임져야 한다니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들게 너무 뻔해서 암담했다. 주변에서는 혼자 어떻게 책임지냐며 더 정들기 전에 다른 집에 보내라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내게 그건 선택지조차 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돈을 덜 모으고,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는 것. 그저 버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1인2견 가구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순조로웠다. 고진이와 감래도 세 식구의 삶에 빠르게 적응했다.

 

첫돌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아주 의젓해졌다. 언제나 곁에 있어 주고, 놀아주길 바라던 아이들도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는 방해하지 않고 각자 휴식을 취한다. 어릴 땐 분리 불안으로 힘겨워하고 하울링을 했지만, 이젠 내가 출근을 하거나 외출을 해도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린다. 얼마 전엔 함께 식당을 갔는데 이동 가방에 얌전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고진과 감래를 보고 옆에 있던 손님들이 “어찌 저리 순하냐”며 “저렇게 점잖으면 다섯도 키우겠다”고 감탄을 하셨다. 아이들이 참 성숙해졌다고 생각은 했는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감격스러웠다. 물론 그래도 다섯은, 좀, 곤란하지 싶다. 셋이라서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되길, 지금처럼, 앞으로도, 쭉.

 

 

 

글쓴이: 미성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고진이와 감래와 산책을 합니다.

가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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