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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사라졌지만, 우리가 할 일은 남았다.

Contents/Reconceptualizing | 새로운 관점

by SOURCEof 2022. 12. 3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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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띠가 태어나는 것을 축복하며 호랑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식자가 사라지면 사슴이나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이 계속 늘어나 너무 많은 양의 풀들이 사라진다. 많은 양의 풀들이 사라지면 초식동물도 먹을 게 없어져 생태계는 무너지고 대부분의 생명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대형 동물을 잡아먹는 대부분의 포식자는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다. 물론 담비나 삵 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표범과 호랑이가 남아있을 때에 비해서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잘 조절하지는 못한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농작물을 먹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혐오하고  ‘유해 동물’이라고 부르지만, 호랑이가 우리나라 산에 살아있었다면 지금처럼 고라니와 멧돼지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 일제강점기에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총독부가 맹수를 대량으로 사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5년부터 2년 동안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가 우리나라에서 잡혔다. 한일 강제병합 후 10년 동안 조선사람이 수렵을 허가받은 건수는 일본인의 10%도 안 된다고 하니 일본인이 한국에서 호랑이를 멸종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제만 탓해서는 안 된다. ‘한국 호랑이’로 불리지만 한국 호랑이는 유전적으로 ‘시베리아 호랑이’에 속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현재 현재 중국 북부 만주 및 러시아 연해주 시호테알린산맥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한국에 살던 호랑이와 같은 종이 야생에서 멸종하지 않은 이상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다시 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호랑이가 한국에 다시 살기 위해서는 인간은 많은 것을 원상 복구시켜야 한다. 그중 가장 먼저 원상복구 시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로’다. 한국의 도로는 너무 촘촘하게 나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먹이를 찾아서 하룻밤에 대략 20~100km 정도를 돌아다닌다. 또한 시베리아 호랑이 두 마리가 최소 400㎢ 정도의 서식면적을 요구하는데, 수호랑이의 경우는 행동 범위가 더욱더 넓다. 서울의 면적이 약 605㎢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 면적의 약 2/3에 해당하는 땅에 도로가 없어야 호랑이 2마리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큰 땅을 두 마리의 호랑이에게 내어주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호랑이가 못 사는 것을 일본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호랑이를 복원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올 말은 아마도 ‘위험하다’이다. 실제로 호랑이는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다. 오로지 생태계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인간을 잡아먹는 포식자는 이제 거의 없기 때문에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개체 수는 계속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지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동물원은 종을 보전한다는 명목 아래 호랑이를 사육한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두 마리의 호랑이를 위해서 400㎢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또한 유전적으로도 취약한 개체를 계속 만들어낸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바로 ‘백호’다. 야생에서는 만분의 일 확률로 태어나는 희귀한 호랑이가 백호다. 하지만 사람들이 백호를 좋아했기에 동물원은 근친교배를 통해 백호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근친교배는 털 색만을 바꾸지 않았다. 백호는 높은 확률로 뇌의 시각 회로가 비정상적이거나 사시, 또는 초점이 안 맞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위턱이 아래턱보다 짧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호랑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사육한다면 동물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의 유전자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백호를 출산했다는 것을 광고하는 과거의 동물원 뉴스를 보면, 동물원이 종 보전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동물을 ‘전시’하는 기관임을 반증하는 듯하다. 백호는 야생에서 생존이 어려워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ZA)는 2011년부터 공식적으로 백호와 백사자 같은 동물의 번식을 금지했다. 뉴욕 동물원협회장인 윌리엄 콘웨이는 “백호는 변종이다. 머리가 두 개 달린 소나 백호를 보여주는 것은 동물원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생태계는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물들이 한국에서 살아간다. 여전히 한국의 바다에는 고래와 바다거북이 살고 있고 돌고래도 살고 있다. 설악산에는 산양이 살아가고, 인천에는 점박이물범도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 모두 위험에 처해있다.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었고 이들이 이동을 할 때는 도로나 뱃길을 지나야 한다. 도로 위에서 수많은 멸종위기종이 죽어간다. 도로와 차를 우리는 매일같이 보지만 사실상 도로와 차는 동물을 죽이는 거대한 살육 기계일지도 모른다. 동물원을 통해 종을 보전하기 전에 이미 있는 우리나라의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게 급선무다. 하이에나, 침팬지, 낙타 등 우리나라에 살지도 않던 동물을 위해서 세금을 들이지 말고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과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 호랑이를 우리나라에 복원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인간이 호랑이를 위한 땅을 내어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있는 동물들의 서식지를 지키고 이미 만든 쓸데없는 도로를 뜯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띠를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는 올해, 한국에서 사라진 호랑이를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동물들이 이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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