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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좋아하는 봄나물

Contents/Research | 리서치

by SOURCEof 2023. 1. 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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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외풍이 점령한 시골집에서의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기름보일러, 전기히터와 온수매트에 의존하며 겨우겨우 추위를 삭였다. 우리의 타협점은 실내온도 13~15도.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가끔 도시의 아파트 혹은 빌라에 사는 지인의 집에 방문하면 놀랍기 그지없었다. 얇은 내복만 입고 있어도 괜찮은.. 따뜻한.. 큰 경제적 부담 없이도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놀라워. 도시의 삶이란 이렇게 편한 것이었어.

 

그런데도 난 여전히 시골의 생활이 마음에 든다. 도시의 아파트는 따뜻했지만 건조하여 아토피가 올라왔고, 높은 천장과 환한 전등 아래서 수돗물로 샤워를 하면 왜인지 제대로 씻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물도 안심하고 먹지 못했다. 미세먼지 탓인지 낮에 눈꼽이 끼거나, 콧 속에 검은 먼지가 끼었거나, 얼굴에 트러블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아스팔트로 뒤덮인 삭막함, 드문드문 예의상 식재해놓은 경관용 나무들. 조화롭지 않고 편안하지 않았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비좁고 숨이 턱 막히는 지하철을 경험해야 했다. 하나같이 검은 패딩이나 코트를 입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그 모습! 그립지 않던 장면.

 

그래서 나는 시골이 좋다. 변화하는 계절에 맞추어 나의 생활양식도 변화한다. 지난 겨울동안 대부분의 생물들이 동면에 들었듯, 나도 잠을 많이 자고 휴식을 취했다. 해가 짧아진 탓에 아침잠이 늘었다. 작년 가을에 재배한 무의 잎사귀를 도려내어 집 처마에 매달아놓았다. ‘시래기’를 자급한 것이다. 시래기는 겨우내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다. 거기에 농사지은 쌀과 콩, 여기저기서 얻은 된장, 시금치, 냉이, 한살림에서 구입한 두부 등. 장보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자급한 것들로 끼니를 챙겨먹었다. 농사를 멈추고 다른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다양한 토종무를 길렀는데 무뿌리도 풍년, 무청도 풍년이다. / ⓒ다님
 

닭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에도 닭들은 잘 이겨냈다. 두툼히 깔아준 볏짚이 도움이 되었을까? 어쨌든 닭들은 현미와 각종 씨앗들을 먹으며 지냈고, 땅에 있는 마른 지푸라기, 그나마 푸른 채소라고 할 수 있는 댓잎(대나무잎)을 먹었다. 가끔 냉이, 시금치, 양배추와 같은 겨울채소도 주었다. 알을 낳는 암탉들은 그들이 낳은 알을 깨어주면 정신없이 먹어 해치웠다. 특히 알의 껍질은 발견하자마자 재빠르게 물고 도망친다. 겨울에 먹는 것이 부족한데, 알까지 낳느라고 몸이 버거운가 보다. 

 

 

현미를 먹는 쑥이 / ⓒ다님
 

이제 봄이 온다. 사람도 기분이 좋지만 닭들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양력 3월 5일은 경칩(驚蟄)으로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때라는데, 그건 닭들이 좋아하는 각종 초록 풀들과 벌레들이 땅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도 올해 우리집 뒷마당에서 풀과 벌레 구경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풀과 벌레들이 ‘봄이야!’하며 정수리를 내밀자마자 닭들이 쪼아 먹어버리는 상상을 해본다.

 

슬프게도 우리집 뒷마당은 해가 잘 들지 않는 음지라서 다양한 풀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가 바깥 들에서 풀들을 한가득 캐와 닭들에게 주고는 했다. 닭들도 사람처럼 ‘상추’, ‘미나리’ 같은 부드럽고 맛있는 풀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야생에 적응해야 하는 닭이 상추만 먹을 순 없지 않은가? 야생에서 자라는 녹색 풀들은 각종 비타민, 미네랄, 칼슘,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닭들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풀은 닭들 식사량의 20~3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론이 길었다. 닭들이 좋아하면서도 닭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풀, 그 중에서도 봄에 나는 풀들을 정리해보았다.

 

1. 광대나물(Deadnettle)

광대나물은 여름 외에 가을~봄까지 들판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풀이다. 약간 시큼하면서 쌉싸름한 특유의 향이 있어서인지 닭들이 크게 좋아하는 풀은 아니지만, 겨울에도 살아 있다가 이른 봄부터 푸릇푸릇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닭들에게 부담없이 줄 수 있는 고마운 풀이다. 광대나물은 닭들에게 항염증, 항균, 항진균 효능이 있다.

 

2. 미나리(Water dropwort)

미나리는 물가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해독 능력이 있어서 물을 정화시키기도 하고 미나리를 먹은 우리 몸을 해독하는 작용도 한다. 우리집 근처 물이 흐르는 곳에 미나리가 많이 자란다. 닭들이 작년 봄에 병아리로 처음 왔을 때 미나리를 잔뜩 캐어 주고는 했는데, 그때부터 닭들이 미나리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독을 함유한 독미나리와 구분을 잘 하여 캐야 한다. 독미나리는 잘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3. 쑥(Mugwort)

봄나물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쑥이다. 우리집 검은 암탉 ‘쑥이’의 이름도 이 ‘쑥’에서 따온 것이다. 쑥은 옴벌레, 이, 벼룩과 같은 기생충들이 닭의 몸에 붙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닭들의 생활반경에 쑥이 자라면 좋을 것 같다. 말린 쑥을 닭장에 매달아 놓으면 어떨까?

 

4. 쐐기풀(Nettle)

우리나라 들판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야생초이다. 미네랄, 칼슘, 단백질이 풍부하다. 하지만 표면에 자잘한 털이 나있어 만지면 따가울 수 있으니 조심스레 채취해야 한다.

 

 

쐐기풀(Nettle)
 

5. 제비꽃(Wild violet)

봄에 나는 보랏빛 들꽃인 제비꽃은 아름다우면서 향도 매우 좋은데, 닭들의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

 

6. 민들레(Dandelion)

봄의 대표적인 꽃. 흰색 꽃이 피는 토종민들레와 노란 꽃이 피는 서양민들레가 활개한다. 이 민들레가 몸에 좋다는 정보가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외지인들이 시골에 찾아와 민들레를 한바탕 캐갔다고 한다. 민들레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몸에도 좋지만, 맛도 있다. 닭들도 민들레를 좋아한다. 지그재그 모양의 잎을 뿌리째 캐어 주면 된다.

 

 

제비꽃(Wild violet), 민들레(Dandelion)
 

7. 여뀌(Smart weed)

여뀌 역시 우리나라의 흔한 야생초인데, 여름~가을에 핑크빛 꽃이 핀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꽃을 보면 ‘아 그거~’ 할 만한 풀이다. 여뀌는 닭들에게 노화방지, 항균, 항진균, 호흡기 건강에 도움을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뀌에 꽃이 피면 독성분이 생긴다고 하니, 봄철 어린순일 때 채취하는 것이 안전하겠다.

 

8. 별꽃(Chickweed)

천연 진통제로,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부드러운 식감에 상추와 비슷한 맛으로 닭들이 좋아한다.

 

9. 쇠뜨기(Horsetail)

쇠뜨기는 밭에서 제거하기가 몹시 힘든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번식력이 강해서 뿌리가 굉장히 깊고 길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 쇠뜨기를 닭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쇠뜨기는 항염, 항균, 진정 효과가 있으며,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는 등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쇠뜨기(Horsetail) / ⓒ네이버블로그, 윤이크로스[건강과생활]
 

10. 토끼풀(Clover)

세잎클로버로 잘 알려진 토끼풀. 필자는 어렸을 때 행운을 가져다주는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클로버를 이리저리 관찰하기도 하고, 꽃으로는 반지를 만들어 놀기도 했는데, 이 두 개가 같은 식물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토끼풀 역시 우리나라 들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야생초로, 칼슘, 니아신, 미네랄과 비타민, 단백질이 풍부하여 닭들에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토끼풀은 ‘쿠마린(coumarin)’이라는 성분 때문에 채취하고 시간이 지나면 독성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닭들이 들에서 난 토끼풀을 직접 쪼아 먹는 것은 괜찮으나, 사람이 채취해서 다량으로 주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 적당히 다른 풀들과 섞어서 주면 괜찮다.

 

이 외에도 냉이, 돌나물, 비름 등 너무 질기거나 독성이 있는 것이 아니면 대게 잘 먹는다. 봄에 올라오는 새싹 자체가 연하고 독성이 없기도 하다. 야생초를 채취할 때 주의할 점은,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 주변이나 농약을 친 곳에서는 가급적 캐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차의 매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성물질과 농약성분은 사람에게 좋지 않듯 닭에게도 좋지 않다. 시골 마을의 경우 어르신들이 논둑이나 밭 주변에 풀을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닭들은 뛰어난 생존 능력을 지녔다. 본인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음식에 그 영양소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렇기에 필요한 음식은 재빠르게 먹고, 독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먹기 전에 인터넷에 검색해보지 않으면 이게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나 역시 시골에 와서 야생의 독성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우리집 닭들의 이름은 모두 봄나물의 이름을 따왔다. 쑥이(쑥), 돌이(돌나물), 냉이(냉이), 그리고 잎싹이. 봄나물처럼 푸르고 생기롭게,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앞 - 잎싹이, 쑥이 뒤 - 냉이, 돌이 / ⓒ다님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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