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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없는 비둘기들

Contents/Research | 리서치

by SOURCEof 2023. 1. 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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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는 동물이 있다. 바로 비둘기다. 비둘기를 조용히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비둘기들을 만난다. 사람이 가까이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비둘기, 하얀 털이 도시의 회색 먼지로 더럽혀진 비둘기, 다리를 절뚝이는 비둘기 등 다양한 비둘기들이 도시 위에서 살아간다. 이런 다양한 비둘기들 중 절뚝이는 비둘기를 눈여겨보면 발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날아갈 때는 여느 비둘기처럼 날아가지만, 길 위에서는 계속 절뚝이며 먹이를 찾는다. 어떤 이유로 비둘기들은 발을 잃었을까? 잠을 자는 공간이 비둘기의 배설물로 가득해서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발을 잃었다는 가설, 비둘기를 쫓기 위한 철조망이나 가시 또는 화학물질 때문에 생긴 상처에 감염되어 발을 잃었다는 가설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머리카락이나 끈 등이 발을 묶어서 피가 통하지 않게 되어 발을 잃게 된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 자연사박물관 조류학자 팀인 프레데릭 지게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위해 프랑스 파리 시내 46개 구역에서 1,250마리의 비둘기를 조사했다. 한쪽 또는 양쪽 발이 없는 비둘기는 276마리로 다섯 마리에 한 마리꼴이었다고 한다. 어린 비둘기는 발이 없지 않았기에, 선천적인 이유로 비둘기가 발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짙은 색 비둘기일수록 면역력이 강해서 병원균에 덜 감염된다. 그러나 깃털의 색과 발의 유무는 관련이 없었다. 이로써 병원균에 감염되어 발을 잃었다는 가설은 힘을 잃었다. 또한 녹지가 많은 공원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발을 잃은 비둘기가 훨씬 많았다. 그 밖에도 연구자들은 미용실 밀도가 높을수록 비둘기의 발이 잘리는 비율도 높다는 사실을 밝혔다. 청소과정에서 도로로 버려진 머리카락과 장터의 음식에서 나온 끈들로 인해 비둘기가 발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비둘기가 병원균에 감염되어 발을 잃기도 할 것이다. 철조망에 앉았다가 입은 상처로 발을 잃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확실한 것은 비둘기가 인간이 만든 도시에 살아가기 때문에 발을 잃었다는 것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은 비둘기를 혐오한다. 소리를 지르기도, 때론 학대하기도, 죽이기도 한다. 비둘기는 당연하게도 도시에 살던 동물이 아니다. 현재 도시에 살아가는 비둘기의 조상은 바다 절벽 등에서 살아가는 락 도브(Rock dove) 종이었다. 인간들은 길을 잘 찾는 락도브를 편지 배달을 위해 사육했다. 또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각종 행사에서 날리기 위해 사육했다. 사육을 통해 락 도브의 아종인 집비둘기(Domestic pigeon)가 만들어졌다. 한국어로는 ‘집’ 비둘기지만 영어로는 Domestic. 즉, ‘가축화된’ 비둘기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비둘기가 도시를 걸어 다니고 있다.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농가에서 본격적으로 비둘기를 사육했고 개체 수가 급증했다. 1971년에는 초등학교에서 비둘기 날리기 대회가 열렸고, 198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유세 연설 식에서 도 비둘기 날리기 행사가 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날린 흰 비둘기는 2,400마리라고 한다. 결국, 비둘기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도, 비둘기가 이렇게 많은 것도 인간 때문이다. 이 문제를 피해자인 비둘기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다친 비둘기, 발이 없는 비둘기는 어느새 익숙해졌다. 오늘 비둘기를 만났더라도 언제 어디서 만난 지 기억하지 못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에는 익숙해진 문제들이 많고, 이 문제들은 ‘익숙함’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사회에 계속 존재해 나간다. 익숙한 동물실험, 익숙한 도축장, 익숙한 공장식 축산, 익숙한 길고양이. 비둘기가 익숙한 새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목에 아름다운 빛깔을 지닌 신비의 새였다면? 우리의 태도는 다르지 않았을까? 발이 없는 비둘기를 걱정하지 않았을까? 발에 무언가 묶인 비둘기를 치료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익숙함’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이 새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처음 이 새를 보고 카메라를 들었다. 마치 고대 동물인 것 같은 외형을 가지고 멋지게 도시 위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 동물은 호주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호주 흰 따오기(Australian white ibis)다. 호주에 사는 친구에게 “이 새 뭐야? 엄청나다!”라고 했다. 친구는 “호주에 많은 새다” “호주 사람들은 쓰레기통 닭(bin chickens)이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익숙함이란 무섭다. 익숙한 차별, 익숙한 혐오. 익숙함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간다. 익숙한 것을 다시 돌아보는 4월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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