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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의 계절 봄

Contents/Research | 리서치

by SOURCEof 2023. 1. 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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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따뜻하지만은 않지만 봄이 찾아왔다. 새싹이 나고 있고 벌거벗었던 나무들은 다시 옷을 입기 시작한다. 봄에는 먹을 것이 다시 풍부해지고 날씨도 따뜻해진다. 그렇기에 많은 동물은 봄에 번식한다. 그래서 그런지 봄은 ‘탄생’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3월에 새 학기도 시작하기 때문에 3월을 ‘새로운 시작’으로서 우리는 경험해 왔다.

 

 

 

 

많은 동물들은 ‘발정기’에만 임신을 할 수 있다. 반면 사람의 경우에는 1년 내내 주로 임신을 할 수 있다. 일년내 두 번 이상 계속해서 후대를 번식하는 동물을 생태학적 용어로 ‘연중번식동물(continuous breeders)’이라고 하며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처럼 발정기가 있는 동물을 ‘계절번식 동물(Seasonal breeders)’이라고 한다.

 

많은 동물에게 발정기가 있는 이유는 음식을 구하기 쉽고 날씨가 좋을 때 새끼를 낳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먹을 것도 없고 추운 겨울에 새끼를 낳는 것은 동물이 생존하기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서 번식을 조절한다. 동물학자 Luis Villazon는 ‘몇몇 영장류의 경우 사회적 요인이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 요인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암컷 침팬지의 경우 발정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 수컷 침팬지는 태어난 새끼 침팬지가 자신의 새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이를 통해 아기 침팬지가 수컷 침팬지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동물의 사회에서 자신의 자식이 아니면 죽여 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Prime earth의 창립자 Jacqueline 박사는 ‘우리는 생존과 성공적인 생식을 위해 사회 구성원을 의지하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라며,  ‘이는 서로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과 목소리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인간은 이 점에서 다른 비인간 영장류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단지 다른 스타일과 방법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언제 아기를 낳아도 사회 구성원과 함께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발정기가 없는 것일까? 왜 인간은 발정기가 없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가설만 존재할 뿐 명확한 해답은 없다. 몇몇 과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7월과 9월 사이에 태어난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일종의 발정기가 인간에게 남아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물을 보며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집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주로 새끼를 양육할 때나 동물은 집을 만든다. 새들이 언제나 둥지에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새는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때만 둥지를 만든다. 왜 수 많은 동물들이 새끼를 양육할 때만 집을 짓고, 인간은 항상 집이 있어야 할까? 어쩌면 인간이 1년 내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겨울에 먹을 음식을 많이 저장해 두면서 아기를 언제 낳아도 상관없어진 것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집 안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동물이 집 안에서 살기 시작한 지 약 100년도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진화의 시간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긴 시간이지만, 우리의 반려동물도 어쩌면 발정기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집은 언제나 음식이 풍족하며, 너무 덥거나 춥지 않기 때문이다.

 

 ‘주거 불안’이 청년 세대의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먹고 자고 비를 피할 공간인 집을 위해 우리는 평생 빚을 갚고, 때론 불안해한다. 반면 동물들은 스스로 집을 짓고 필요가 없어지면 집을 버린다. 그 집은 흉물스러운 폐가가 되지 않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에게 견고한 집은 언제부터 필요했을까?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은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견고한 집이 아니라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집을 지어 이동해가며 살았다. 아마 그 시대에 태어난 아기들은 지금 태어난 아기들보다 더 쉽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둥지를 만드는 새들처럼, 땅굴을 파는 쥐들처럼 자신의 집을 지어 어디서든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아기를 더 안전하게 1년 내내 키울 수 있는 견고한 집을 지어 살아간다. 인간이 이런 견고한 형태의 집에 살 게 된 것은 축복일까? 억압일까?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집들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움막에 살던 시대를 동경하고 있다. 사실, 이 기술력과 집들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움막’을 동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들은 우리가 집을 가지기 위해 평생 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새끼를 양육하고 버려버리는 집을 짓는 동물의 입장에서.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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