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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곳

Series/품종견의 진실

by SOURCEof 2023. 1. 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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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가 펫샵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칠 수 없었다. 유리창으로 된 펫샵 안에는 작디작은 아기 강아지들이 저마다 투명한 사각형 우리에 갇혀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엉긍엉금 기어 다니는 강아지들. 엄마의 젖이나 형제들의 온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이 강아지들이 가족들과 잠시라도 함께한 적이 있었을까? 엄마 개가 핥아주는 혀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엄마 개의 따뜻한 젖을 맛보기는 했을까? 이 강아지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이 딱딱하고 차가운 사각형 안에 감금되어 있는 것일까?

 

 

▲  반려동물 번식장의 어미 개들이 살아가는 환경. 의 한 장면.              ⓒ SBS

 

 

펫샵에서 판매하는 강아지는 번식장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개 번식장에서 펫샵 사이에는 개 경매장이 존재한다. 경매장은 반려동물 유통과정의 핵심 고리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수요가 늘자, 판로를 확보해야 하는 번식업자와 번식장을 돌며 ‘물량’을 조달해야 하는 펫샵 운영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형성되었다. 경매장을 거치는 강아지는 한 해 25만-30만에 이른다. 현행법상 경매장은 동물 판매업으로 등록되어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경매장이 불법 번식장의 강아지를 팔아주는 유통경로라는 점이다. 경매장을 거치는 강아지 대부분은 미신고된 번식장, 즉 시설이 열악하고 동물 학대가 빈번히 일어나는 번식장에서 태어났다. 아마 내가 펫샵에서 마주친 강아지들도 한 평생을 강제 임신과 출산에 학대당한 엄마 개로부터 태어났을 것이다. 또 생후 2개월도 안 된 채로 경매장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3조에 따르면 거래 가능한 개와 고양이의 월령은 면역력 문제로 2개월 이상이다. 하지만 불법 번식장과 경매장의 규정 위반에도 제재가 미약하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인간은 거의 없다. 그렇게 강아지들은 엄마 개 품에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바구니에 빽빽하게 실린 채 날라진다. 그들은 시끌벅적한 경매장에서 몇 십만 원에 낙찰되어 이 펫샵, 저 펫샵으로 흩어진다.

 

 

개 경매장

 

개 경매장에서 생명은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개 경매장은 “세상의 어떤 개도 팔 수 있는 곳”이다. 경매장에서는 새끼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개가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경매장에는 펫샵 사장, 동물 병원 수의사 같은 구매자들은 물론 강아지를 매물로 내놓은 번식업자, 심지어는 육견업자, 도살업자까지 “전국에 개를 만진다는 사람들은 죄다 몰려”오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 강아지, 그중에서도 품종견은 펫샵이나 동물 병원으로 높은 가격에 팔려나간다. 이들은 운이 좋으면 ‘분양’되어 예쁨 받으며 살 수도 있다. 믿을 게 운 뿐이라는 점이 큰 문제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개들은 어떤 ‘상품’이 될까? 경매장에서는 모견 종견도 거래된다. 이 중에는 출산 능력이 떨어진 모견, 생식을 못 하게 된 종견, 늙은 개, 병든 개까지 있다. 이 개들은 “폐견”이라고 불리는데 아무리 헐값에 팔아도 팔리지 않으면 상자에 다 때려 넣고 통째로 팔린다. 한 상자에 7만 원에서 10만 원이라고 한다. 이 폐견들이 낙찰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가족’ 혹은 ‘보호자’라고 불릴만한 인간과 만날 확률이 전무하다. 폐견들은 개 장수에게 끌려가게 된다. 개 장수들은 개들을 데려가면 곧바로 죽이고 ‘작업’해서 개소줏집이나 개고기집에 납품한다. 이처럼 경매장에서 어떤 개는 ‘애완’이라는 기능을 위한 상품으로, 또 어떤 개는 훌륭한 ‘육질’과 ‘보신’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숫자로 다시 탄생한다. 한 생명이 어떤 상품이 될지 결정하는 존재는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탐욕과 폭력성에 찌든 인간이다.

 

 

 

 

누군가는 펫샵 진열장의 앙증맞은 아기 강아지들을 보고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나는 속에서 천 불이 난다. 나에게 펫샵은 강아지 혹은 고양이를 품는 환하고 따뜻한 생명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윤이 생명의 귀함을 뛰어넘는 곳. 생명이 숫자, 즉 돈으로 거래되는 곳. 생명을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곳. 고로 ‘상품’을 구매한 자들에게 책임감이 아니라 함부로 그 상품을 쓰고 버릴 수 있다는 일종의 ‘권리’를 부여하는 곳. 이 공간들은 아직도 이 세상에 만연하다. 강아지들이 모여 있는 펫샵, 펫샵에서 경매장, 경매장에서 번식장... 이 공간들의 본질은 모두 동일하다. 이미 탄생한 생명을 ‘상품’으로 재탄생시켜버리는 곳. 이 끔찍한 착취와 학대의 공간, 폭력으로 점철된 공간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시켜버리기 위해서 우리 인간은 변화해야 한다.

 

수많은 개들이 케이지에 켜켜이 갇혀있고 그들의 등 위에 스프레이로 숫자나 품종명이 적혀있다. 케이지에서 그들을 구조하고 케이지를 몽땅 부수어버리자. 숫자와 품종명을 지워버리고 그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선물하자. 개별적인 존재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호명하자. 그리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상품’이 ‘생명’으로 부디 재탄생할 수 있도록.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비건맛집을 탐방하고 사람들과 떠드는 것을 사랑합니다. 2년 전 가족이 되어준 뽀리와 동네에 묶여 사는 개 쫄랑이, 똘이와 매일 산책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행복하고 존중 받는 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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