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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장르

Series/품종견의 진실

by SOURCEof 2023. 1. 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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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명은 봄에 눈을 뜬다. 인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 말고도 이러한 존재는 또 있더라. 아주 가까운 곳에.

 

 

글의 내용과 관련 없는 개

 

2021년 봄, 갑자기 어떤 개가 나타났다. 그 고동색 개는 비닐하우스 옆에 1m 즈음 되는 목줄에 묶여있었다. 처 음에는 그 개가 무서웠다. 하지만 여러 번 그곳을 지나가며, 그 개의 진한 고동색의 털과 선한 눈망울을 봤다. 어 떤 개가 갑자기 차도 옆의 비닐하우스에 생뚱맞게 묶여 있으니, 여러 사람이 그 개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꼬동이, 고동이. 우리는 그 개를 그렇게 불렀다. 고동이는 수북한 쓰레기 더미 옆에서 항상 우리를 반겼다. 고동이는 하루 에도 여러 번, 다양한 인간과 산책했다. 사실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인간이 끌려다녔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고동이가 피를 흘렸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 중성화 수술을 빨리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아 저씨한테 말씀을 드려도 딱히 말이 안 통하네요. 걱정이에요." 킁킁. 어떤 누런 색의 개는 고동이의 주위를 맴돌 기 시작했다. 나는 24시간 고동이 옆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고동이와 함께 쓰레기 더미 옆에 앉았다. 누런 개 는 길 건너편에서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내 목도 1m 줄에 매여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내가 몸을 낮춰 앉아있으 면, 그 누런 개는 내가 없는 줄 알고 왔다가 나를 보고 도망쳤다. 하지만 다시 길 건너편으로 돌아가서 우리를 빤 히 쳐다봤다. 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몇 시간을 고동이 옆에 앉아있다가, 고동이를 짝짓기로부터 잠깐 '피 난'시키기로 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고동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그 누런 개가 우리를 졸졸 따라왔 다. 아마 실내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고동이는 절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근처에 서 있던 사람을 아 무나 붙잡고,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나올 테니 잠시만 고동이를 봐달라고 했다. 짝짓기를 막아야 한다고 하며. 벙 찐 눈으로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알겠다고 했다. 서둘러 다시 나와보니 고동이는 '무사했다'. 고동이와 함께 집 주변의 카페에서 목이라도 축이려고 했지만, 고동이는 카페의 야외석도 무서워했다.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 어 낑낑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쓰레기 더미 옆으로 돌아왔다. 고동이의 집으로. 여전 히 길 건너편에는 누런 개가 느긋하게 누워있었다. 파트너가 말했다. "인간과 다르게 개들은 강간하지 않는대." 지친 나는 알겠다고 하며 자리를 뜨며 고동이에게 말했다. "고동아, 무조건 싫다고 해! 말 안 들으면 콱 물어버 려." 해맑게 묶여있는 고동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 생각났다. "씨발 새끼." 고동이를 묶어 놓은 그 인간을 욕하며 겨우 잠을 청했다.     

 

 

글의 내용과 관련 없는 개
 

고동이는 밤에 홀로 4명의 아가를 낳았다. 고동이는 지쳐 보였고, 신경이 날카로웠다. 아가들은 눈도 뜨지 못하 고, 낑낑댔다. 파리들이 윙윙 날아다녔다. 머리가 빙빙 돈다. 한국의 무덥고 습한 여름. 고동이에게 말했다. "고생 했네, 우리 고동이. 혼자 애기들 낳느라고 외로웠겠다. 대단해." 겨울에 태어난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였다. '임신과 출산을 계획적으로 한다면, 왜 굳이 힘들게 여름이나 겨울에 애를 낳을까.' 들뜨고 기분 좋은 봄에 태어났 다면, 내 성격은 좀 덜 더러웠을까. 정신 못 차리게 더운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고동이는 땡볕을 견디지 못하고 도 망쳤다. 근처의 차 아래에 납작 엎드려있었다. 아가들을 고동이에게 보여주면서 나오라고 했다. 아가들도 있으니 집에 가자고. 싫었나 보다. 어찌어찌 우리는 고동이를 다시 묶었다. 시원한 물과 얼음팩을 가져다주었지만, 고동 이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지독한 여름이었다.

 

모든 탄생이 보송보송하고 신비롭지는 않다. 길 위의 탄생은 외롭고, 치열하다. 자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에는 항상 음악이 깔려있다. 길고 부드러운 음들이 조화롭게 겹쳐서 보호막을 만든다. 깊은 바닷속을 둥둥 떠다니다 보면 생명이 공기 방울처럼 뾱뾱 나타난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다큐멘터리는 이어서 가 슴이 벅차오르는 합주를 튼다. 눈물이 핑 돈다. 내가 본 탄생은 그렇지 않았다. 쉴새 없이 차가 달린다. 하이톤의 날카로운 소리들이 무작위로 스쳐 지나간다. 맴맴. 윙윙. 헉헉. 짧은소리들이 반복해서 빠른 리듬을 만든다. 아가 들은 뾰족한 이빨로 엄마의 젖을 물어뜯는다. "아, 귀여워." 고동이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툭툭 뱉는다. 일기예보는 오늘도, 내일도, 내일모레도 덥고 습하다고 떠들어댄다. 고동이를 매일 보러오는 사람들 이 얼음물과 아이스팩을 가져다준다. 찰랑찰랑, 첨범 첨벙. 애기들은 너무 더운지, 아예 그 물속에 들어가 앉아버 렸다. 물은 금방 진한 고동색이 되었다.

 

 


글쓴이: 젤리박

파주에 사는 과몰입 퀴어. 터부와 그 주변의 것에 관심이 많다. 소리를 매체로 무언가를 만들 때도 있다. 도그 워커이며, 노견들이 많이 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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