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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다른 탄생과 죽음

Series/품종견의 진실

by SOURCEof 2023. 1. 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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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집 지키는 개의 출산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지역의 한 농장에서 청소년과 함께 농사 프로그램을 하게되었다. 농사도 썩 잘 해본적 없고, 청소년들과도 썩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꽤나 긴장되는 날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이런 긴장을 풀어주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그곳과 그 주변의 동물들. 농장으로 가는 길에는 리트리버 한명이 있다. 마당이 있는 럭셔리 전원주택에 금빛으로 빛나는 긴 털을 흩날리며 살아가는 그의 앞을 지날때면 늘 난리가 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온 몸을 반겨주는 그의 이름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철장 사이로 짧은 만남을 하고 떠날때면 세기에 이별을 해야한다. 끄응대는 그를 두고 코너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침내 우리가 일하는 농장이 나온다. 이곳은 야생과 사람의 손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숲과 들판이다. 여기에 진이, 진돌이, 진순이 이렇게 세 명의 진돗개가 살고 있다. 농장은 아까 그 마당보다 훨씬 넓은 숲이 있지만 이들 셋은 모두 묶여있다. 특히 진순이는 사람에게 사나워 청소년들이 다칠 수 있어 저 멀리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곳에 혼자 지낸다. 앞서 만난 리트리버의 집과 이곳은 100m도 안되는 거리에 떨어져있지만, 이 둘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이번에 농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진이의 출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태어난지 열흘이 되었다는 꼬물이들은 이제 막 눈을 뜨고 몸을 가누기 시작했다. 진이는 아가들을 핥아주고 젖을 먹였다. 아가 동물들이 귀여운 것은 생존 전략이라나! 이 녀석들을 보고 모두가 탄성을 금치 못했다. 이들을 보기위해서 앞다투어 아가들 곁으로 몰려들었고, 진이는 아가들과 청소년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진이는 아까 말했듯 묶여있는 강아지고, 진이의 남편이라는 진돌이도 묶여있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진이의 가임기가 다가왔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묶여있었다. 진이의 냄새를 맡고 어디 멀리서 떠돌이 강아지가 와버린 바람에 진이는 아무도 모르게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진이의 가족들은 당황스러웠지만 기쁘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받았고, 또 정성스레 돌보았다. 하지만 앞으로 때가되면 진이의 귀여운 아가 강아지 다섯마리는 어디론가 보내져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곳에서도 아마 집 잘 지키는 좋은 강아지로 살게 될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강아지집이 있는 곳에 1.5m 남짓되는 쇠사슬에 묶여, 평생 늦지않게 공급되는 사료를 먹으면서 말이다. 가족들은 진이가 들개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조치는 없었다. 진이는 언제까지 계속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살게될까? 진이의 아가들은 보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두번째 이야기 : 품종견의 이야기

지민은 나와 함께 살고있는 2살 된 반려견이다. BTS를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의 네이밍 센스 덕분에 얻게 된 지민이란 이름과, 그의 과도하게 활발한 성격 덕분에 왕왕 오해받지만 지민은 여성 강아지다. 활발하고 운동량이 많음에도 실내에서 함께 살고 있다. 대신 하루에 두세 차례 길고 짧은 산책을 나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어질리티(강아지 장애물 운동)를 배우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때 처럼 어질리티 수업을 받으러 간 날, 선생님은 나에게 조심스레 운을 떼셨다. 자신의 반려견(또한 보더콜리)과 지민의 아가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둘다 나이가 교배하기에 좋은 나이고, 지민이는 좋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자신의 반려견은 똑똑하니 둘의 조합이 괜찮다고 했다. 분양은 걱정하지 말라고. 처음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고 조금 어지러웠다. 사랑스러운 아가들을 보는 것을 분명 기쁠 것이다. 그러나 지민이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은 강아지 가족을 늘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가들이 태어난다면 그게 몇이든 다른 가족으로 떠날 것이다. 지민은 아가를 낳고, 모두 떠나 보내야한다. 누구를 위해서 임신과 출산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중성화 하지 않은 여성 품종 강아지는 언제든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아가가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 누군가는 나에게 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혈통 등록을 하게 되면 분양보낼 때 분양비를 받을 수 있테니, 일단 혈통 등록부터 해보라는 제안이였다. 지민이가 이런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품종견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진이처럼 불시에 들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흔히 말하는 잡종이 태어나게 된다면, 그 아이들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돈을 받기는 커녕 입양처를 구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강아지 여러마리를 돌보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민이 누구의 아이를 임신했냐에 따라서 나는 사용한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혹은 그 돈을 모두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세번째 이야기 : 어린 남성 닭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끔찍한 일도 일어난다. 지난 설 연휴때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한 활동가가 오랜시간 비질 (도살장 앞의 동물들을 마주하는 활동)을 하며 구조한 잎싹이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와 도살장에 들어가기 직전의 닭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 <잎싹이와 잎싹이가 될 수 있었던>이다. 이곳에는 닭들이 갇혀 있는 철창이 쌓여있는 트럭들의 사진이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닭들의 삶은 위의 강아지들의 삶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기구하다. 그중에서도 남자 아기 닭, 수평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방금 막 태어나서 보송보송 예쁜 노란색 털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부화공장에서 태어난 산란계 병아리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존재들은 탄생 직후 컨베어 벨트 위로 쏟아진다. 그리고 사람의 손을 통해 생식 돌기에 미세한 차이가 구분되어 분류되기 시작한다. 암평아리는 그대로 부리가 제거되어 좁은 닭장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평생 알을 낳는 기계가 되어 살아간다. 한편 다른 한쪽으로 분류 된 수평아리들은 컨베어 벨트를 지나 산채로 차갑고 커다랗고 둥그런 파이프 분쇄기 가운데 구멍으로 발려들어가 가루가 되어나온다. 사료로 재탄생 된다고 한다. 산란계 수탉 들은 육계에 비하면 생산성이 매우 낮다. 투입되는 시간과 사료에 대비해서 소출되는 고기의 양은 적은데다가 육질도 별로다. 생산성, 시장성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바로 죽이는 것이 더 낫다. 전세계에서 매년 70억 마리의 수평아리가 부화하자마자 분쇄기에 갈리거나 질식사당한다고 한다. 경제성과 생산성을 최우선시 하는 세상에서는 이들이 숨 쉴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가 채 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또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명제는 동등해보이지만 탄생과 죽음은 결코 동등한 적 없었다. 어떤 동물의 탄생은 걱정거리가 된다. 어떤 동물의 탄생은 환영 받고, 심지어는 꽤나 좋은 값으로 매겨진다. 어떤 동물은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판단과 편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수평아리들을 살릴 돈과 시간이 없어서, 품종견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우니까, 진돗개들은 계속 그렇게 묶여서 살아왔으니까, 요리 된 닭이 올려진 식탁 에는 죽음의 맛과 향은 나지 않으니까. 이 모든 관행들은 계속 된다.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다. 시린 바람이 가고 생명의 기운이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생명과 탄생의 기쁨은 있는 그대로 만끽하기에는 아직 슬픈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봄은 이렇게 우리에게 잔인하다. 우린 언젠가 조금이나마 덜 혹독한 봄을 맞이 할 수 있을까? 

 

 

 


글쓴이: 효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텃밭을 가꾸고 요리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 반려견 지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sunature_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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