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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생동물인가요? 반려동물인가요?

Contents/Reconceptualizing | 새로운 관점

by SOURCEof 2023. 1. 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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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라고 할 때 ‘반려(伴侶)'라는 뜻은, ‘짝이 되는 동무’를 뜻한다. 즉 짝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 ‘반려동물’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우후죽순 생겨나는 체험동물원을 한 시민단체와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다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체험동물원에 갔다.

 

체험동물원은 동물을 직접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등의 ‘체험’이 많은 동물원이다. 예를 들어 동물들이 갇혀있는 유리창 한쪽에 구멍이 뚫려있고 그 구멍을 통해 음식을 줄 수 있게 되어있다. 주로 기존의 동물원들보다 규모가 작으며, 야외 공간은 없고 실내에만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물에게도 어린이에게도 끔찍한 환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늘을 볼 수 없는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물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음식을 그냥 주면 구멍으로 주는 음식을 잘 받아먹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서열이 낮은 동물은 체험동물원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동물을 대하는 법을 잘못된 방향으로 배우게 된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동물들을 굶겨서 사람과 가깝게 만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사육한 동물이 다른 아종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rock dove를 사육해 집비둘기를 만들거나, 멧돼지를 핑크색 돼지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종 이름에는 ‘domestic(가축화, 길들여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어간다. 예를 들어 비둘기는 Columba livia domestica이며, 삼겹살이 되는 핑크색 돼지는 Sus domesticus다. 다른 아종으로 변했다는 것을 통해 ‘사육’으로 인해 동물의 유전적 특징이 변화하며 생태적 특성이나 생김새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동물을 길들일(domestication) 수 없다. 작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등의 민감한 성격을 가진 동물은 사육장 안에서 죽어버리고 만다. ‘체험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언뜻 보기에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음식을 잘 받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험동물원에 있는 많은 동물들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다른 아종으로 분화되기 전의 동물들이다. 즉, 배고픔에 못 이겨 자신의 모든 습성을 내려놓고 인간에게 먹이를 받아먹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예로 사람을 잘 따르는 앵무새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난 앵무새를 부모로부터 강제 분리해서 사람이 먹이를 준다. 이렇게 길러진 앵무새를 ‘애완조’라고 하며, 부모 새에게 길러진 앵무새를 ‘관상조’라고 한다. 애완조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 어깨에 딱 달라붙어 잘 살아간다. 과연 이들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때 부모에게서 납치해 키워서 인간을 좋아하게 만들었는데?

 

‘그럼 체험동물원의 동물들도 다른 아종으로 분화될 때까지 키우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지금처럼 인간이 동물을 억지로 가둬서 사육하게 되면 정말 다른 아종으로 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화는 동물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동물들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형태의 동물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아종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작은 사육장에서 계속 죽어나갈 수도 있다.

 

 

 

 

귀여운 야생동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와 귀엽다. 키우고 싶다’라고 한다. 아마 이런 심리가 만들어지게 된 데에는, 체험동물원이 한몫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야생동물이 억지로 사람에게 가까이 올 수 있게 만들어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체험동물원의 경우 그 시작이 ‘희귀동물 펫숍'인 경우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파충류나 절지류를 판매하는 펫숍들이 동물원도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험동물원에 놀러 왔다가 작은 거북이를 손에 들고 떠나는 어린이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반려동물-동물원 동물-야생동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동물원 동물은 반려동물일까?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일까? 반려동물은 동물원 동물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먼 과거에 못된 사람에게 붙잡혀 고통을 받으며 살아남은 동물들의 자손들일 수도 있다. 아니면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서 사람들 근처를 서성이다가 사람과 친해지게 된(Self-domestication) 경우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잡아서 억지로 다른 아종으로 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 스스로 인간과 친해지길 바래서 다른 아종으로 진화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스스로 인간과 살아가기로 결정한 동물들이 아니라면 그 사육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야생 동물들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때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며 그 존재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은 ‘소유욕’과 다르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가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아닐까?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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