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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를 위한 복날을 위하여

Contents/Reconceptualizing | 새로운 관점

by SOURCEof 2022. 12. 3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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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이 며칠 전 지나갔다. 7월 11일 초복, 21일 중복, 8월 10일 말복. 더위를 나겠다는 이유로 삼계탕과 개고기를 먹는 날이다. ‘요즘 누가 복날을 챙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복날을 챙기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도살장이다. 도살장에 들어오는 트럭 수와 도축장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의 증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필자는 복날 전 개 도살장을 촬영한 적이 있다. 도살장에 들어오는 트럭의 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Life-dinner principle(Dawkins and Krebs 1979, Abrams 1986)이라는 단어가 있다. 직역하자면, ‘삶-저녁밥 원칙’ 정도의 말이 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포식자가 사냥감을 잃는 것은 저녁밥을 굶게 되는 것인데, 피식자에게는 목숨을 구한 것이 된다. 포식자는 한 끼를 거른다고 해서 죽지 않지만 피식자는 한 끼를 위해서 죽게 된다는 ‘원칙’이다. 인간이 개고기 혹은 닭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죽지 않지만, 닭과 개는 그 한 끼를 위해서 죽는다.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물론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포식자를 탓할 수 없다. 생태계의 균형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여기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전제가 있다. 포식자도, 피식자도 생태계 피라미드의 구성원이어야 한다. 만약 피식자보다 덩치가 큰 포식자의 개체 수가 피식자의 개체 수보다 많게 되면 포식자는 모든 피식자를 잡아먹고 먹을 것이 없게 되어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식자 보다 덩치가 큰 포식자는 피식자보다 적은 수로 생태계에 존재해야 한다. 또한 생태계는 순환구조여야 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배설물이 식물의 양분이 되고 포식자와 피식자가 죽어 식물의 양분되어야 생태계가 순환한다. 이 순환의 연결고리가 무너지게 되면 생태계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인간의 생태계

그럼 인간이 속한 생태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야생동물이 지구에 3% 살고 있고 인간이 36%, 사육 동물이 60% 살고 있다. ‘다행히’ 포식자인 인간보다, 피식되는 동물의 수가 많다. 그러나 ‘사육되는 동물’의 수가 심각하게 많다. 현재 전 세계에 닭 190억 마리. 소가 15억 마리, 양이 10억 마리 돼지가 10억 마리가 살고 있다고 the economist는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 80만 마리의 소가, 150만 마리의 양이, 400만 마리의 돼지가, 2,500만 마리의 닭이 도축되고 있다. 이런 죽음을 따졌을 때 수많은 동물이 ‘키워’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칠면조, 말, 물‘고기’, 오리, 토끼 등을 합쳐서 인간은 하루에 30억 마리의 동물을 ‘도축’하고 있다.  80억에 가까워지는 인간을 ‘위해서’ 사육되는 동물 없이 현재의 식습관을 인류가 고수한다면, 이미 모든 야생 동물은 절멸했을 것이다.

 

인류가 인위적 생태계를 만들었지만 인간이 속한 생태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 사는 인간의 배설물이 식물을 키우는 양분이 되는 일은 드물다. 또한 가축도 넓게 분포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밀집 사육되어 ‘가축’의 배설물이 오히려 땅을 오염시키게 되었다. 결국 사육동물과 인간의 배설물이 식물을 키우지 않아, 순환의 고리는 끊겨 버렸다.

 

인간이 위협하는 지구 생태계

순환의 고리만 끊긴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육동물의 개체 수가 심각히 많아져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동물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먹이가 필요하다. 한국의 시골에 가면 알 수 있듯이 소에게는 주로 사료를 주는데, 그 사료의 주성분은 옥수수다. 이와 관련한 통계를 찾아보면 소에게 4kg의 곡식을 먹이면 소의 몸(고기)가 450g 만들어진다. ‘농사’가 아닌 ‘채집’을 통해서 ‘사료’를 만들기에는 지구가 너무나 작다. 그래서 인류가 선택한 것이 ‘농사’다. 농사를 위해서 전 세계의 숲은 파괴되고 있다. 숲을 조금 파괴하기 위해서는 소에게 4kg의 곡물을 주지 말고 인간이 4kg의 곡물을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특별했던 날, 복날

개를 먹고, 닭을 먹는 ‘복날’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이유를 조금만 생각해보자. 약 50살이 넘은 사람들은 말한다. “1년에 고기를 한 번 두 번 먹을까 말까였다” 고기를 평소 먹지 않았기 때문에 ‘고기 먹는 날’이 존재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매일 고기를 먹는다. 심지어 1인 1 닭과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닭 먹는 날’ ‘개 먹는 날’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Life-dinner principle, 나의 저녁밥을 위해서 누군가의 삶을 앗아갈 정도의 상황에 우리는 노이지 않았다. ‘오늘은 복날이니까’라는 이유로 더 많은 동물을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동물 복지 고기가 많아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의 양을 많이 줄여야 한다. ‘동물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드넓은 땅이 필요하다. 동물들이 더 이상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살지 않도록, 몸을 한 바퀴 돌릴 수도 없는 작은 철창에 갇혀 살지 않도록 넓은 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먹을 채소를 재배할 땅도 많이 필요하다. 약 5182만 명이 살아가는 한국 땅에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큼의 고기를 줄여야 하나 정확히는 모른다. 현대에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해도 우리 조상들보다는 고기 먹는 양을 줄여야 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가 되길 바란다. 물론, 농업도 지구를 파괴하고 있지만, 축산업과 동물의 사료를 위한 농업보다는 지구를 훨씬 덜 파괴한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자’가 아니라 ‘완벽을 향해 노력하고 고민하자’라고 생각한다. 평생 ‘완벽’할 수 없겠지만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복날에 완전 채식을 해보는 것 어떨까?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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